인연으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지난해 이맘때 쯤이었다. 태평양 바다 건너 코쟁이 나라에서 낯모르는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느닷없이 전해져 온 전자우편이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씌어 있었다.
 
‘감명 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사는 교포인데 선생님께 글쓰기를 배우고 싶습니다.……’
 그분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글이란, 내가 모 일간신문에 쓴 칼럼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그 글을 통해 서로 간에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짚어 본다. 내 보금자리가 있는 이 궁벽한 산골 마을에서 자그마치 이만 오천여 리, 초음속 여객기로도 장장 12시간이 넘어 걸리는 머나먼 타국이 아닌가. 그 엄청난 거리를 이 메일 편지는 순식간에 날아왔을 것이다. 가만히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김춘수 선생의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중략)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내가 만나 이중섭」 중에서>

목젖까지 차오른 가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일본으로 떠난 아내에 대한 이중섭의 절절한 그리움을 시인은 이렇게 그리고 있다. 만일 시인이 이 시를 쓰기 전에 이메일이라는 통신수단이 존재했더라면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같은 표현은 나오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초광속으로 전해지는 저쪽의 소식을, 시에서처럼 한 뼘 한 뼘 지우며 애태워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됐다. 적어도 보름씩, 많게는 한 달 이상씩 걸리던 거리를 이메일은 단 몇 초 만에 데려다준다. 예전 같았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축지법을 쓰는 유일한 존재가 신이었다. 제사를 지낼 때 아무리 이곳저곳으로 장소를 옮겨 다녀도 죽은 조상은 용케도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귀신같다는 표현을 쓰는가 보다. 현대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 인간도 신처럼 축지법을 쓰는 시대가 됐다. 
광속보다 빠른 것이 ‘생각’이라고 하지만, 이 생각 못잖게 빠른 것이 이 메일 편지가 아닌가 한다.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서로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신통방통한 의사소통 수단인지 모르겠다. 
편리라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지만, 이런 편리는 얼마든지 있어도 그리 나쁠 일이 없겠다 싶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께가 되면 어김없이 태평양 바다 건너 이역만리의 소식을 담은 안부와 함께 손질을 부탁하는 작품이 도착한다. 
그래서 그때만 가까워 오면 정인의 연서戀書를 기다리듯 이메일 편지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거기가 어디라고……? 
참으로 우리는 지금 지구촌 시대의 축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