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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의 상념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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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5  16: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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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언제나 비를 앞세우고 온다. 
봄비는 한 번씩 내릴수록 연둣빛 어린 이파리들을 조촘조촘 초록으로 번져나게 하고, 가을비는 한 차례씩 흩뿌릴수록 대지의 만물을 성큼성큼 거두어 간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며 후두두 떨어지는 소낙비는 장마전선을 몰고 오는 전령사이며, 겨울 초입에 을씨년스럽게 추적이는 가랑비는 칼바람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비라고 해서 다 같은 비는 아니다. 기분을 마구 들썩이게 하는 환희의 비가 있는가 하면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명상의 비가 있고,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열락의 비가 있는가 하면 감정을 울적하게 만드는 우수의 비도 있다. 속삭이듯 조용히 내리는 여린 는개 비가 있는가 하면, 집어삼킬 듯 사납게 퍼붓는 소나기 비도 있다. 
지루하던 장마가 제 스스로 지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여름날의 한가로운 오후, 고향집 사랑방 툇마루에 팔베개 하고 누워 듣는 낙숫물 소리는 흘러간 옛 시절로 데려다주는 마력을 지녔다.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 소리는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비누 거품처럼 뽀글뽀글 포말을 게워내며 줄기차게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통통 튕겨 나오는 산뜻한 피아노 음률에 취해 사색의 오솔길을 거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따금 먹구름에 동반된 천둥소리는 절대자의 존재를 믿게 해 그 앞에 절로 옷깃 여미게 만든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빗줄기는 그의 비장한 죽음이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쌓인 한이 그리 많아, 주저 없이 이 땅거죽에다 머리를 처박으며 장렬한 최후를 맞는 걸까. 아니면 대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조건 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귀의歸依인지도 모른다. 대지는 그 많은 생명들을 큰사랑으로 받아주는 넉넉한 품의 모성이다. 
빗줄기의 낙하에다 그윽이 눈길을 주고 있노라니, 문득 몇 해 전 중국 동부 장쑤성江蘇省 어느 마을에서 지상을 향해 돌진하던 수만 마리의 새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깜깜한 밤하늘 폭죽이 터지고 난 후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불꽃의 잔해처럼. 무슨 곡진한 사연이 있었길래 그들은 집단자살이란 극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일까. 혹여 광대무변한 창공에서 더 이상 삶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허무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기야 밋밋하고 단조로운 허공에 비하면 지상의 생김생김이란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데가 있다.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강물이 흘러가고 푸나무들이 초록으로 숲을 이룬 세상, 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의 공간이며 기대고 싶은 안식처이냐. 
우리들 인간은 살아 숨 쉬는 날들 내내 저 가없는 하늘 허공으로 멀리멀리 날아가 보고 싶어 하는 동경의 마음을 부풀리고 있건만, 이 빗줄기며 새떼들은 지상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꿈꾸며 의심도 없이 내리꽂힌다. 이로 미루어 짐작할진대, 세상 그 어떤 존재자이건 자신의 삶터보다는 아직 겪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다 선망의 마음을 두는 것은 결국 똑같은 이치인가 보다.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런저런 뜬생각으로 상념의 우물이 깊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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