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등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다.
몇 해 전 TV 다큐멘터리 ‘맨발의 효자 기봉이’란 프로가 방영되어 세상에 화제가 되었었다. 기봉이는 선천성 지적 장애아로 태어나 89세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현대판 효자이다. 그는 천성이 착하고 순진해서 정직하게 삶을 살아간다. 장애인 마라톤 대회에서 여러 차례 일등을 한 바 있고, 일반인과 겨뤄서도 47등을 한 때도 있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청소, 음식 만들기, 설거지는 물론이고 냇가에서 가재를 잡아와 요리를 해서 이웃집에 나누어주는 착한 심성도 지녔다. 동네에서 묘목 일을 도와주거나 농사일을 거들어주고 받은 돈으로 팔순 노모를 봉양하는 효자 기봉이, 나이 48세의 노총각으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단다. 학교에서 2시간 거리를 걸어서 다닌다고 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웃음전도사, 워낙 유명해져서 여자친구도 생겼단다. 기봉이 같은 친구만 있다면 이 세상은 경찰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집안 산림을 도맡아서 한다고 몸을 마구 부려 손발이 트고 무릎에 부상을 입어도 병원에 가질 않아 노모가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가 치료를 해주었다고도 한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을 성금으로 개량해 지금은 노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음악 시간이면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가 십팔 번이고 자기 이름은 겨우 쓸 줄 아는 정도지만, 아들 뻘 되는 친구에게 한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네 살 때 열병을 앓아 산에 버린 것을 살아 있어서 다시 데리고 와 엄마가 길렀단다. 신체적 나이는 48세지만 정신적 나이는 천진난만한 열두 살 소년이다. 방과 후에도 교실에 남아 한글 배우기와 복도에 전교생 신발 정리며 쓰레기 분리수거, 교실 청소를 도맡아 놓고 한단다. 또한 연령을 초월해 초등학생의 장난감과 숨바꼭질의 주인공이 되어 인기 짱이다.
신은 우리 인간에게 한 가지 재능은 주시는가 보다. 기봉이는 마라톤 대회에서 따온 메달을 반 친구들께 자랑하며 마라톤을 직접 지도하기도 한다.
옛말에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기봉이는 초등 친구에게 항상 져준다. 요즘 시쳇말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성을 가르친다. 아이들은 기봉이 아저씨가 만날 웃으니까 복이 찾아온다고 했다. 학부모들도 기봉이에게 자기 아이들과 놀아주기를 바라고, 심지어는 물량공세까지 한다는 것이다.
마라톤 연습을 할 때는 항상 헌 신발을 신고하거나 맨발로 뛴다. 출전할 때만 새 신발을 신고, 닳을까 봐 아끼며 맨발로 뛸 때도 있다. 근검절약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모범 학생이기도 하다.
옛날 중견교사 시절 특수아동을 가르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운증후군이라고 해서 몽고인과 닮은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항시 웃음을 잃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는다. 언제나 싱글벙글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아이들이기에 내가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다.
C작가의 ‘바보 존’이란 저서에 보면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상상하며, 바보처럼 모험하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현대처럼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바보처럼 꿈꾸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오늘을 사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바보가 길 잃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으니까.
수년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자화상에 붙여진 이름 ‘바보야’란 글이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취재기자들이 추기경님께 왜 바보냐고 물었을 때 “바보 같지 않나요?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살았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우리의 바보 형제 기봉이, 현대판 바보 효자,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고 혼란한 시대에는 기봉이와 같은 친구가 있어 항상 웃는 얼굴로 남을 대하는 훈훈한 사회가 찾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 태어날 때는 착하게 태어났으나 사회가 악하게 만든다는 맹자의 성선설과, 태어날 때는 악하게 태어났으나 잘 가르치면 선하게 된다는 순자의 성악설이 있다면, 기봉이 같은 사람은 전자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맹모삼천지교’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수월성교육만 강조하다 보면, 소외 계층이 희생양이 되는 수가 많다. 기봉이와 같은 순수한 바보를 모델로 삼아, 도덕성과 인성교육을 한층 더 강화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확실히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까지는 학습능력이 탁월한 인재들에게 주로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 시대에는 점점 ‘꿈꾸는 현명한 바보’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천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바보가 모자란다는 얘기가 아닐까.

21세기 IT산업의 최선봉자 ‘스티브 잡스’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한다.
최고가 되고 싶으냐? 바보가 되라!
명장이 되고 싶으냐? 바보가 되라!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고 싶으냐? 바보가 되라!

우리의 영원한 바보 기봉이, 그는 각박한 시대에 길 잃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수호천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