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은 아무리 땅속 깊이 묻혀 있어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곤계昆溪 백금옥白金玉(1918∼1979) 여사의 한살이가 바로 그랬다. 역사에 길이 빛날 생애를 살아 내었으면서도 오랜 세월 동안 어둠에 가리어 있다 평전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백금옥 여사의 감동적인 사연을 접한 것은, 수년 전 도서출판 북랜드의 편집주간을 맡아서 그의 평전 발간 작업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평생의 사표로 삼을 만한 귀한 인연을 만났으니 나로서는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곤륜 계곡의 순결한 금구슬, 백금옥” 이름처럼 여사의 삶에 대해 나는 한마디로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백 여사는 대구가 낳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마음속 깊이 우러러 받들고픈 위인이다.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사의 굴곡진 일생. 그 누구라도 여사의 한살이에 대해 알고 나면 저절로 존외의 마음이 우러나와 옷깃을 여미게 되리라.
여사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뒤 지독한 가난 때문에 그토록 계속하고 싶었던 학업에의 꿈을 접고 만다.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그 철없을 시절에 어머니와 함께, 훗날 돈을 벌면 꼭 학교를 세워 자신과 같이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원을 세운다. 그 원을 이루기 위해 파출부에서 과일 행상까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몸을 불사른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절박한 가난에도 굴하지 아니하였고, 여자로서의 소박한 행복인 가정을 이루는 일마저 포기하면서 이상 실현에 매달린다.
꿈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뼈를 깎고 몸이 부서지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금옥여자 중·고등학교와 금옥장학재단 그리고 금옥학술재단을 일궈내었으니, 백 여사는 그 말을 온몸으로 입증해 보여준 셈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럴 때 절감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너 나 없이 일신의 영달과 안락을 위해 연연해할수록, 우리는 오로지 버림 하나로 살다 간 큰 인물들의 생애에 목말라 한다. 여사의 생애는 그런 갈증에 한 모금 청량수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돈이 피보다 진하고 사랑 위에 군림하는 요즘 같은 황금만능의 시대에서, 오로지 굳은 신념 하나로 살다 남김없이 소진하고 떠난 백 여사의 일생은, 시류에 휩쓸리며 이냥저냥 꺼둘려 가는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흔히들 우리네 인생을 일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한다. 하지만 백 여사의 삶은 비록 ‘공수래’였지만 결코 허망한 ‘공수거’가 아니었다. 갈 때는 빈손으로 떠났어도 정신만은 길이길이 살아남아 세인들의 앞날에 푸른 신호등이 돼 줄 것이므로.
백 여사의 삶을 생각하면 일찍이 서산대사가 남겨 놓은 시 한 수가 가슴을 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내일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踏雪野中去/不須胡亂行/今日我行蹟/遂作後人程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삶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는 것 같다. 그중 하나는 피땀 흘려 모았으니 한 푼 갖고도 벌벌 떨며 재물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겪어 본 모진 가난으로 해 불우한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불사르는 유형이다. 백 여사의 삶은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 쪽에 선다.
자고로 돈이란 버는 자랑 하지 말고 쓰는 자랑 하라고 했던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는 속담처럼, 힘들게 모았으니 귀하고 값지게 사용하라는 말일 것이다. 백금옥 여사는 이 말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실천에 옮긴 현자임에 틀림이 없다. 군자는 의義에 민첩하고 소인은 이利에 민첩하다고 한 논어의 말씀대로라면, 평생을 바쳐 피와 땀으로 일군 전 재산을 오롯이 세상으로 되돌리고 떠난 백 여사야말로 참으로 여중군자女中君子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가고 없어도 자취는 남는 법, 여사는 사람이 세상에 와서 어떻게 살다 떠날 것인가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우리 삶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나는 백 여사의 사연을 글로써 세상에 퍼뜨리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을 느낀다. 여사의 이 감동적인 사연이 오늘을 사는 우리 이웃들에게 널리널리 알려져서, 그의 꽃부리 같은 생애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그리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