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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옛날) 얘기는 다 재미있다
최 필 동 수필가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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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7  10: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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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방송에서 TV 흑백시대 얘기가 나왔다. 1960년대 말일 때이니 근 50여 년이 지났다.
6·25 이후 라디오도 귀할 때 농촌은 유선앰프(amp)로 하루 서너 시간 라디오 방송을 듣기도 했다. 100여 호 넘는 동네에 라디오 가진 집도 한두 집밖에 없었으니 그 유선앰프가, 그 바쁜 농촌생활에서도 즐길 틈은 없었지만 그래도 유일한 레저(leisure)였다. 또 그 앰프가 전화기 대용도 됐으니 노래(지금은 팝송이지만 그땐 유행가였다)를 신청하면 그것도 들을 수 있었던, 당시로서는 꿈같은 세월이었다.
또 라디오만큼 귀했던 것은, 지금은 레코드지만 당시는 축음기 혹은 유성기(留聲機)였으며 그 음반도 LP판이 아닌 SP판이었다. 이른바 산업사회가 시작되니 진공 금성라디오가 나오고 곧 따라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나왔다. 그것도 좀 나은 집만 가졌던 시절이었다. 이에 반해, 대개 라디오는 갖고 있었지만 TV는 부잣집만 갖고 있었다. 그게 도시에 국한된 얘기였다.
당시 인기 있던 스포츠는 단연 김일(金一)의 프로레슬링이었으며, 고교 야구도 그 못지않았다. 통상 모두 라디오 중계는 있었으며 TV 중계는 있긴 있었지만 극소수만 가졌으니 아주 제한적이었다. 김일 레슬링이 있는 날이면 다방은 초만원이었다. 와글와글 소리치고 박수치고였다. 공중전화도 없을 때이니 혹시 쓸 일이 생기면 가장 쉽게 다방을 찾을 때였다. 1969년 미국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 있었다. 7월16일 오후10시에 로켓 발사했는데, 5일이 지나 21일 오전5시에 선장 닐  암스트롱이 착륙했다고 당시 신문은 적었다. 지구와 가장 가깝다는 달에 5일을 날아가야 했으니 그 거리는 과연 얼마일까? 내 머리로는 상상이 안 된다. 그 선장의 달 착륙이야말로 우리 인류사에 남을 역사라고 했으며, 그 첫발을 디디는 그 순간을 보기 위해 평소 부자로 알려져 있던 이웃집 대문을 기웃거리던 생각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역사적 순간을 세계인들은 보고 싶어  했을 것이며 실시간도 아닌 TV 녹화방송을 한다고 예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나는 대구서 하숙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하숙집 고교생과 대학생 대여섯 명이 염치도 없이 그 집 대문을 두드렸다. 다방에 가면 볼 수는 있지만 커피를 사 먹어야하니 그건 더 어려웠다.
닐 암스트롱이 사다리 칸을 하나 둘 천천히, 조심스레 내 딛더니 마지막 달 표면에 발이 닿을 때는 디딜까 말까 2,3초를 망설이는 듯도 했다. 그러더니 ‘자! 이제 결심이 섰다’는 듯, 인류 최초 달에 인간의 발을 내딛는 역사적 순간을 맞는 것이었다. 물론 극적 효과를 위해 하나의 ‘연출’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인류 최초라는 소명감도 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지금도 그 ‘멈칫멈칫’이 머리에 강렬히 남아 있다.
그 얼마 후 난 결혼을 해 첫딸도 얻었다. 이 애 서너 살일 때 피아노, TV도 있는 집주인 방에 가서 그 집 여고생과 거의 매일 놀기도 했다. 어느 날 퇴근을 했더니 애는 날 보자마자, ‘아빠, 테레비 사줘!’ 했다. 그러나 얇은 월급봉투를 생각하니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정확한 값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기만원일 것이라 생각했으니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너 번 ‘사줘’를 듣다 보니 할 수 없이 생각을 바꿨다. 자식이 그렇게 애원하는데, 더구나 ‘뭣을 어찌 해도’ 안 아플 첫애인데 이를 뭉갤 아비는 없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갔다. 모르긴 해도 아마 흑백 9인치였을 것이 분명하다.
나 포함 그 집 세입자가 세 집이었으니 인기 있는 드라마(그땐 연속극) 시간에는 그 비좁은 방과 부엌에서 함께 TV 보던 시절이었다. 특히 소극(笑劇·코미디) ‘웃으면 복이 와요’가 있을 땐 어김없이 함께였다. 생긴 대로 낳을 때이니 애도 두세 명이 보통이었다.
그 한참 뒤 서넛 직장 동료와 함께 고교 야구를 보는 날이었다. 앞서 언급한 프로레슬링과 고교 야구는 당시 쌍벽을 이루는 인기 스포츠였다. 그날은 군산상고가 패색이 짙은 9회 말이었는데 역전 홈런을 친 것이다. 그 극적인 역전승에 환호성이 터진 것은 물론이다. 그 경기는, 당시 야구 마니아들은 한 시대를 휩쓸었다고 고교야구가 있을 때마다 회자될 때였다. 성인 프로야구가 없을 때이니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세 살짜리 둘째 애가 그 환호성에 놀랐으니 그 충격으로 이틀인가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 그 애가 지금 47살이니 참 옛날 얘기다. 할머니가 손자 데리고 해주던 권선징악의 동화나 우화(寓話)는 어린 손자들의 감성을 부르는 데에는 옛날 얘기가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앞서 쓴 글은 불과 50여 년 전의 얘기였으니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지난날의 추억만 되살렸으면 좋겠다는 내 스스로의 판단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 전기수(傳奇叟·책 읽어주던 남자)가 생각난다. 참으로 50여 년 사이 바다가 뽕나무밭(桑田碧海)이 된 형국이다. 사실 지난날 얘기가 어찌 ‘흑백TV’뿐일까? 북한보다 못 살 때도 있었다가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보면, 구태여 경제규모가 세계 몇 째라는 한두 마디로는 표현할 말을 찾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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