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에도 꾹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까치의 설날이 지나고 맘 설레는 설날아침이 찬란하게 밝아왔다. 
색동옷을 입고 부산스레 너스레를 펼칠 나이는 아닌 멋쩍은 오십 중반의 늙은이가 아직 새벽 未明조차 없는 이 시간에 혹여 아들이나 조카 녀석들의 새해 문안 전화라도 올려나 하고 가만히 있는 전화기만 응시하고 있는 내 모습이 가히 코메디가 따로 없다.
매일 아침에 洗手洗眼을 하건만 무슨 國民儀禮라도 하는 양 거울보고 빗질하고 또 거울보고 하면서 매일같이 한 줌씩 내 곁을 떠나고 남은 엉성한 머리칼을 포마드와 스프레이로 정렬시키고 또 정렬시켜 본다.
묵은 장독 청소하듯이, 어제 많은 知人들께는 인사랍시고 했을 뿐더러 설날 아침에 일가 식구 그것도 옛 풍습에 따르면 三從(삼종형제)외의 집안 문안은 다음날 하는 것이라 했으니, 아무리 초현대식 요즘의 풍속도를 적용한다 해도 이 시간에 전화 하는 것은 고생하는 119구급요원 호출 외에는 멋쩍은 행동이긴 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첩첩 산중의 이곳에서 곱게 사려놓은 한복을 차려입고  대님에 갓으로 衣冠을 정재하고 멀리 계시는 팔순 노모께 현대의 기기문명을 이용하여 영상전화로 세배 올리니, 곁에서 시중들고 있던 조카 녀석의 힘을 빌어서 어머님께옵서 늙은 아들에게 세뱃돈이라시며 돈(錢) 그림 한 폭을 핸드폰으로 보내 주셨다. 家禮를 중시여기는 成均館 어른들이 보시면 驚氣(경기)를 할 광경을 내가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노파는 울고 선비는 노래하며 승려가 춤춘다’는  고사 성어를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내친걸음에 전화기 앞에 어머님이 좋아 하셨던 수정과(감주가 없어서) 한잔과 묵 한모를 고여 놓고 勸酒歌(권주가)한곡을 올리니 어머님은 벌써 “얘야 전화비 많이 나올라”하시며 아들 가난을 걱정하고 계신다.
꼭 가서 세배 드리며 뵙고 싶었지만, 朝夕으로 건강문안을 하기도 했고 歸省歸京(귀성귀경) 막힌 도로를 보고 놀란 가슴이, 한 보름 후에 오는 삼일절의 연휴를 이용하면 좋을 듯하여  가문의 突出兒가 되어 보기로 한 것이다.
전화를 끊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날이 밝아서 나의 벗이자 食口인 개(犬)의 밥을 챙겨주고, 나의 설날 아침 식사를 시작하자니 아들 조카들의 세배인사 전화가 그야말로 빗발친다. 
筆者가 듣고 싶었던 인사말은, 말을 처음 배우는 코맹맹이 어린애의 인사를 그리워했는데 아들과 조카 녀석들도 벌써 콧수염이 숭숭하니 모두가 格式에 맞춘, 가례도감에서 보고 흉내 낸듯한 인사말을 하여 세월의 흐름을 맛보며 거울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현 근무지 요양원에 가서 어른들과 놀아줄까?’를 생각 안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위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설 명절에도 갈 곳도 없구나’하고 나를 도리어 가엽게 생각하여 걱정 하실까봐, 아버님 幽宅(유택)을 후딱 보고는 오래전에 근무하던 곳으로 가서 問安하고 노래 불러 드리고 漫談이랍시고 하면서 보호자 없는 어른과 놀다가 하루해를 채웠다.            
날이 어두우니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인 모양이지만, 筆者는 여러 독자 분들에게 진정한 孝는 청학동 훈장님께 안가더라도 따뜻한 가슴으로 부모님이나 이웃의 어른들께 이름 없이, 조용히 그들의 가슴이 되어보는 사골국물보다 진한 사람의 냄새가나는, 사진 못 찍어도 그들의 가슴에 ‘情’字 도장을 줄 수 있을 숨은 노력임을 말씀드린다.
봉사하는 장면의 사진은 높은 나으리들이 무더기로 생산해 내고 있고 밝은 조명등 아래 전시들을 하고 있으니, 우리 훌륭하신 독자여러분들은 필자의 약한 말을 크게 실천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져 보아도 무리가 없을 줄 안다.
‘게으른 선비가 설날 아침에 책방 문 두드린다’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무슨 일이나 사항이 展開되어 가는 것이 動機 誘發이 필요하듯, 모처럼 고향에 오신 분들이나 여러 사정에 의하여 객지 계신 분들이, 또 다가올 새로운 설날에는 (돈키호테같은) 앞의 글을 말씀하고 실천하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사진 찍는 도움보다 더욱 많아지길 기도한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