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는 변화와 변전(變轉)으로 발전해 왔다.
인류는, 유인원의 중간 존재인 네안데르탈人이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멸종됐고, 이후 사람과 가장 가깝다는 호모사이엔스가 우리 ‘인류의 시원’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렇게 출발한 인류는 돌을 깨서 쓴 구석기(타제식) 시대와 갈아서 쓴 신석기(마제식) 시대를 거쳤다. 그 신석기에는 사람의 뼈와 어금니, 짐승의 뼈로 만든 골각기(骨角器)도 썼고, 좀 더 진보된 기술로 연장을 만들어서 쓴 청동기, 철기 시대도 있었다.
그렇게 수백만 년을 골각기, 철기 등으로 만든 연장을 써오다가 그것이 호미, 괭이로 변하고 오늘에 와서는 트랙터도 출현했다. 새로운 도구가 나올 때마다 그때까지 썼던 이기(利器)들은 골동품이 됐으니 그게 불과 수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변화와 변전으로 오늘의 문명사회가 됐지만 골동품이 된 그 이기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들 초중고 시절의 각 학생 수는 좀 많은 곳은 천여 명이었으며 학교 앞 문방구(문구점)는 항상 문전성시였다.
그 활기찼던 역사의 현장인 문방구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사라지는 것이 역사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기 위한 변화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상이 일어나니 그게 문제의 요체(要諦)이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이른바 인문학, 철학 등의 ‘관념(이데올로기)’은 시대 조류에 따라 변화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인 ‘이성과 감성’은 인위적으로 부정하거나 단절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게 내 보편적 시각의 예단이다. 하지만 그게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가 아마도 산업화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가 아닌가 한다.  GNP가 중진국으로 입성했고 ‘먹거리’도 해결했으니 정신적 소양과 감성적 예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국민 기풍을 진작시키자고 전석환(정확치는 않지만)이라는 분이 건전가요와 동요 그리고 가곡(클래식)의 보급이라는 명분으로 국민개창 운동을 표방하며 지휘봉으로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때 시대적 요청이었던지 호응도도 높았고 한창 주가를 올릴 때였다. 오늘의 ‘아이돌’의 인기까지는 아니지만 시대상으로 봐서 그 정도면 선풍적이라 할 만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향악을 연주할 때나 지휘자(콘덕터)가 있는 줄 알았는데 관현악도 아닌 동요, 가곡에서도 처음 시도된 콘덕터가 있었으니 그래서 인기가 높았던 것 아닌가 한다.
그랬는데 큰 환호에 너무 몰입했는지 실언(?)을 하고 만 것이다. 그때 TV프로가 ‘노래가 좋아’로 기억하는데, 노래라면 적어도 가요(팝송)보다는 가곡이 우월하다고 하며 대중가요를 폄하는 듯한 언사를 쓴 것이다. ‘가요’ 쪽과 논란이 상당히 뜨거웠고 그래서 그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끝내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혹시 이건 내가 무례를 범하는 건가?
사실 나도 가요보다는 가곡을 선호하지만, 그 당시는 클래식과 팝송은 정서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말해 클래식은 예술이라 이름 했고, 팝송은 대중의 환호는 받았지만 ‘예술’이라고는 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두 영역에서도 그렇게 설정되는 데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지만 지금에서 보면 상황이 반전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간 영역인 ‘팝페라’도 등장하는 오늘의 이 시대에 그걸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한때는 사실이 그랬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애환을 잘 표현한 가곡이 대중음악에  밀려 방송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며, 시인 엄원용(한국가곡작사가협회 초대 회장) 씨가 쓴 기고문이 지상에 실렸다.
사실 방송에서 가곡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이다. 큰 요인으로 든 것이 지나친 ‘상업주의’라고 했으며, 다음으로 전체 대중음악 중 국내 음악 편성 비율을 50~80%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곡은 그 조차도 없다 했다. 아름다운 선율과 노랫말이 국민 정서 함양에 기여하고 우리 문화와 전통을 이어온 가곡이 이런 푸대접을 받다니…. 내 애창했던 가곡이 찬밥 신세가 되고 끝내는 사멸될 것이라 생각하니 이게 바로 ‘역사 단절’이 아닌가 해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다. 사랑 받던 가곡을, 마치 발신만 하는 한때의 통신기기 ‘삐삐’ 버리듯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이돌’, ‘힙합그룹 DJ DOC’가 한류 선풍을 일으켜 국위(?)를 선양하는 것 까지는 좋다 하더라도 ‘상업만능’은 안 된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 오늘의 대중가요 그 가사를 들으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삐걱삐걱, 정치하는 아저씨들 맨날 싸워요. …싸우다가 결국 개판돼요’ 이런 가사에도 환호를 받는데 반해, 이성·감성을 끝없이 향유하는 가곡이 설 자리를 잃어간다니 참 슬프다. 예술은 감성에서 출발한다는 이른바 ‘감성 일원론’을 들지 않더라도 ‘삐걱삐걱’ 같은 표피적(表皮的) 가사에 밀려나는 가곡을 보고 앞서 말한 ‘변화·변전’은 돼도 통째 단절은 안 된다고 한 예단이 새삼 떠오른다.
옛 ‘석기시대’와 ‘문방구’에다, 물질지상주의로 인해 인간의 기본 정서인 감성 등의 가치가 허물어져 가는 상황을 연결하자니 좀 생뚱맞기는 하다. 그러나 ‘감성’이라는 인류 최대의 ‘축복’도 얄팍한 시대 조류 앞에 맥없이 휘둘림을 보고 적어보는 자탄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