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호에, 다친 아내 6개월 요양이 필요하다고 썼다. 단순한 간병뿐이 아닌 ‘가사 노동’ 전반이 내 차지가 돼 팔자에 없는(?) 가사도우미 생활이 시작됐다. 이럴 때 나는 가정婦인가, 가정夫인가?
두어 달 누워만 있어 소화불량에다 입맛까지 잃은 아내, 어느 날은 멸치볶음이 먹고 싶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 지시만 한다.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코치가 선수를 다루듯 말이다.
먼저 프라이팬에 물 조금 두르라는 것부터 시작한다. 물이 자작하게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추고 멸치 넣고 조금 끓이다가 양파, 파, 고춧가루, 다진 마늘이 들어가고 간 맞춤의 멸치 액젓은 한 숟갈 이상은 안 되고 마지막으로 물엿과 참기름을 넣으면 조리는 종료된다. 아, 참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게 해서 한 반찬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평소 내가 할 수 있는 것 라면 끓이기 뿐인데, 다 해서 갖다 주는 밥상만 받아먹다가 내가 그 과정을 몸소 체험해보니, 세상의 모든 주부의 가사 노동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거칠 때마다 누워 있는 아내에게 뜨거운 프라이팬 들고 가서 지시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세상사 쉬운 것이 어디 있을까만 역시 반찬 조리도 쉽지는 않았다.
이럴 때 또 케케묵은 옛날 얘기 할 수밖에 없다. 시대 따라 우리 식생활인들 변하지 않을까만 많이도 변해버려 금석지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조로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제삿밥 지으며 주걱에 붙은 밥알 떼먹다가 시어머니에 들켜 맞아 죽어 꽃이 된 이름 ‘며느리밥풀꽃’이 생겨날 만큼의 배고픈 시절의 식생활은 오늘에서 말하는 식감(食感)은커녕 맛도 영양도 따질 겨를이 없는, 좀 심하게 말하면 겨우 ‘연명’이나 하는 수준이었다. 그럴 시절에 웬 멸치볶음? 그때를 생각하니 생뚱맞을 수밖에 없다.
오늘의 이 흐드러진 먹거리는 전통 식품 된장 청국장 등을 밀려나게 하고 소스, 샐러드와 그리고 피자가 우리 밥상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가 밥상을 맡기엔 어려움이 더 많다. 누가 먹거리 취향을 물으면 미식가(美食家)라고 거침없이 대답하는 시대가 돼버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항상 위생을 먼저 생각하고 냄새에도 민감해 지나칠 만큼의 정갈함을 떠는(?) 아내이기에 뒷설거지도 내겐 큰 부담이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었다. 닦느라고 닦아도 말라붙은 음식 찌꺼기는, 우리 민속 속설에 있는 ‘섣달 그믐날 밤에 붙은 악귀’나 되는 듯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하느라 했는데 한 번 지적을 받고는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사실 찹쌀 밥알이 말라붙으면 정말 잘 떨어지지 않아 닦는데 좀 애를 먹었다.
오래 전부터 가사 노동은 해도해도 끝도 없고 해논 표도 없다고 옛 어머니들이 했던 얘기다. 이른바 ‘가부장’이라는 권위주의적(?) 가족 구성이었을 때 여성, 특히 가모(家母)는 그 이름만으로도 전형적 가사 노동의 대명사일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세태의 변화는 이런 데까지 영향을 미치게 돼 그것이 이제는 여성만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는 사회 분위기가 진작부터 형성되고 있었다.
더구나 설 등 명절일 때는 주방 일은 왜 며느리·딸만 해야 하느냐, 아들·남편도 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가족 간 화목’이 최대 이슈인데 이 문제로 분란이 일어나고 심하게는 이혼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른바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고스톱이나 치는 세태는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사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가사 담당의 경계가 무너진 지도 오래 됐으니까 말이다.
직장 여성 출산하면 1년인가 휴가 주더니 이제는 남자 사원도 육아휴직을 주는 시대가 됐다. 그것은 가사도 육아도 여성만의 일은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이 정착돼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산은 여자 몫이고 육아는 남자 몫이라는, 어쩌면 타당할지도 모를 주장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으니 이는 가정 경영의 큰 변화를 함의하는 것이리라.
40여 년 간 아내가 전담 수행해 왔던 안방 살림살이를 내가 까짓 불과 두 달여도 채 안 됐지만 그 일들을 아주 일부이나마 하려니 그 어려움을 느껴 적어보는 것이다. 세상사 스스로의 체득(體得)도 중요함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이번을 계기로 공력(功力)을 들인 만큼 표도 없는 가사 노동의 그 막중함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이 공력을 모르고 있었다니! ‘성공한 인생’을 환호할 때 분명 그 환호 이면에 있었을 피눈물의 과정은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격언이 있지만, 그러나 이즈음에 와서는 그보다 더 강한 것이 가정주부라 말하고 싶다. 그야말로 굳이 婦이든, 夫이든 구분할 것도 없는 가정주부야말로 막중대사(莫重大事)인 가사 노동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다시없는 강한 이름, ‘어머니’지만 이보다 더 강한 이름이 “가정주부”일 수 있다고 생각해 이제야 철이 든(?)듯 나름으로 토해낸 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