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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지방의 불교3. 고령지방 불교역사와 사상의 전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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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2  14: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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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사찰이 있다. 지역에는 고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고령지역의 불교역사와 사상적 특징을 기획취재를 통해 알리고자 한다.

   
 


통일신라시대 고령의 불교 유적과 사상-대가야가 신라에 복속된 후 대가야군으로 됐다가 경덕왕대에 고령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대가야의 왕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그 흔적지우기에 따라 철저히 폐허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대가야지배층의 유민은 대거 사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가야의 왕실에서 불교문화를 받아들였다 해도 그 유적과 유물은 남겨질 수 없었다. 다만 지역의 새롭게 생겨난 지배세력을 위해 고분이 축조되는 것을 허용하는 정도였다. 실제로 통일신라가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는 불교의 유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불교문화가 대가야왕실과 관련된 것이어서 단절된 것이거나 신라 복속 후 삼국시대에는 지방 불교문화가 고령지역에는 발붙이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 고령의 사원과 불교 사상-고려시기에 이르러 고령지역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 사원의 현황을 정리하고 지방사회에서의 역할을 알아본다. 현재 고령지역에서 확인된 사지는 6개소이며 대가야읍을 중심으로 외곽을 돌아가며 사지가 확인된다. 이들 사원은 고려시기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불교 신앙생활과 생활예제를 실행하는 장소였다.
○다산면 상곡리사지는 형체의 마모가 심한 석불 1구가 있다. 150센티 정도의 크기로서 마을 주민들은 미륵불이라고 부른다.
○운수면 대평리사지에는 미륵불로 보이는 석불 1구가 있다. 1미터 정도의 크기로서 상부 타원형 반석을 다듬고 선면에 광배와 석불을 한꺼번에 새긴 것이다.
○쌍림면 용리에는 반룡사가 있다. 고려시기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는 다층석탑이다. 화강함 기단위에 1층탑신이 남아있고 그 위에 점판암으로 만든 옥개석이 다층으로 돼 있다.
○쌍림면 합가리사지는 사찰의 토석과 기단석재, 와편들이 상당수 잔재하며 일부탑재로 보이는 것도 있다. 석불 2구도 남아있다.
○개진면 개포리사지에는 석조관음보살좌상이 있다. 높이 1.5미터, 너비 1미터, 두께 30센티미터 정도의 얇은 주형판석표면에 얕은 음각으로 새긴 보살좌상으로 보관 중앙에 화불이 새겨져 있고 왼손에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점으로 보아 관음보살좌상임이 틀림없다.

조선시대, 일제시대의 고령의 불교-조선조 태종은 사원의 경제적 기반을 박탁해 사원이 망폐하게 됐다. 수차례 정리 안이 구체화 돼 사사전이 지급되는 사원은 242개만 남게 됐다.
나머지 사찰은 경제가 박탁되었기 때문에 유지될 수 없고 망폐의 길을 걷게 됐다. 이로써 고려시대에 행정단위의 비보사의 기능이 약화되고 공인사찰이 대거 사라지게 됐다. 고령지역의 공동체를 결속하는 경행, 연등회, 진병법석 등의 기능을 하고 풍속도량역할을 하던 물산사도 이 시기에 폐사되고 당간지주만 남게 됐다고 추정하고 있다.
고령향교가 임진왜란 이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된 것은 1702년 군수 구문유가 중건하면서다. 향교는 고려시대에 현 단위까지 확대되었으나 기능이 강화된 것은 조선 초이므로 향교 대성전 석전 강화로 물산사 폐사도 이때쯤으로 추측된다. 또 조선중기부터 1666년 도암서원, 1696년 문연서원, 1711년 영연서원, 노강서원 1832년 반암서원 등 서원이 다수 들어서고 유고의 선성선유를 숭배하면서 사원의 사회적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고령사람들의 고려시기이래 불교적 세계관도 유교적 세계관으로 점차 전환돼갔다.
고령지역의 나머지 고려시대 이후 사찰도 점차 망폐를 면치 못했다 사찰의 창건은 법제로 금지되고 오직수축, 재건만 허락됐다. 옛터를 중수할 경우는 양종에 신고하고 예조에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했다.
중심부를 벗어난 지역의 유명사찰은 존속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예는 반룡사다. 반룡사의 석조부도는 4기인데 팔각원당형이 2기, 석종형이 2기이다. 팔각원당형은 구형탑신에 원응당, 악선당이라는 각명이 있다. 하지만 이들 승려의 이력은 알 수가 없다.
영조 29년(1753)년에 제작된 반룡사 동종은 높이 50센티미터이고, 무게는 100근이다. 상대부분에 육자진언을 명기하고 종신에 명문을 지닌 조선 후기 동종의 특징을 지닌다.
이 종을 만드는데 참여한 희선 등의 승려와 김만세와 같은 신도 등의 이름과 역할이 새겨져 있다.
문화유적총람 고령군 반룡사조에는 근거자료는 제시하지 않은채, 임진왜란 후 병화로 화진된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했다. 다시 화재로 대웅전 및 육당 요사가 타버린 것은 영조 40년(1746)에 현감 윤심협이 대웅전, 요사, 반세루 등을 중건했다. 1930년에 다시 중수했다고 한다. 1911년 6월에 일제는 사찰령을 발표해 한국불교의 교정을 총독과 지방관이 장악하도록 했다. 주지의 임명을 총독이 관장했다. 이에따라 본사로 지정된 사찰은 각각 본말사법을 제정해 조선총독부에 신청해 승인 후 시행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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