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는 사람을 애국자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관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자기 나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 어쩌다 멀리서 휘날리는 태극기만 보여도 핑그르르 눈물이 돌고, 어디선가 애국가 소리만 들려도 찡하니 가슴이 메여 온다.
아내라는 이름 역시 어쩌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늘 함께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고 살다가, 막상 떨어져서 지내보면 새삼 그 존재 가치를 절감하게 된다.
세상의 남편들은 대다수가, 아내에게 예기치 못한 변고라도 생기는 날이면 그때서야 땅을 치며 뉘우치리라. 아, 왜 진작 좀 챙겨주지 못했을까 하고. 그래서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이런 유행가 가사도 생겨났는가 보다. ‘부모불효 사후회父母不孝死後悔’니 ‘풍수지탄風樹之嘆’이니 하는 말들은, 살아생전 부모 모시기를 소홀히 했음에 대한 뉘우침의 표현이다. 어찌타 부모뿐이랴. 아내를 잃었을 때의 회한도 그에 별반 못지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며칠 전 일이다. 아내가 한 일주일 가량의 일정으로 해외 나들이를 떠났다. 여느 때는 깨닫지 못했던 아내의 빈자리가 확연히 드러난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곁에 있을 적엔 표가 나지 않다가도 막상 자리를 비우고 보니 모든 것이 불편하고 아쉽다. 기성세대의 남편들 가운데는 아내의 수발이 끊어지면 채 한 달도 못 가서 폐인이 되고 마는 살림치가 적지 않다지만, 내가 바로 그 부류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장 먹고 입는 일에서부터 뒤죽박죽으로 엉클어져 버린 실타래 꼴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두서가 없고 요령이 돌아나지 않는다. 혹여 늦잠이라도 자 버려 아이들한테 아침밥도 챙겨 먹이지 못하고 학교에 보내야 하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그런 조바심으로 잠을 자도 수잠이고, 그마저 중간 중간에 벌떡벌떡 깬다. 자명종을 제 시각에 맞추어 놓지만, 그래도 마음은 도무지 안심이 되지를 않는다. 체육복은 제대로 넣어 갔는지, 준비물은 빠뜨리지나 않았는지, 학원엔 제때에 도착을 했는지 이런저런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귀가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면 좌불안석이 돼 현관문을 연신 들락거린다. 이렇게 한 주일 내내가 완전히 긴장의 연속이다. 아내가 영영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건만 이처럼 답답할 줄이야. 아내 잃은 가장의 심경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성도 싶다.
평소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던 물건도, 떨어지고 나면 당장 아쉽게 여겨지는 것이 우리네 사람살이다. 대형할인점에서 손수레를 사용하기 위해 동전을 찾았을 때 호주머니에 만 원짜리 지폐밖에 들어 있지 않았던 일을 떠올려 보라. 멀리 떨어진 서비스 코너를 찾아 교환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없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씩 갖고 있으리라. 아내란 바로 이 동전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한다.
여느 때는 예사롭게 보아 넘기던 일에도 유심히 눈길이 간다. 일테면 쓰레기 처리 같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생활쓰레기는 또 그런대로 어떻게 할 수 있겠건만, 음식물쓰레기를 내다버리려니 왠지 쭈뼛쭈뼛 망설여진다. 남자들 가운데는 아무도 이런 자질구레한 집안일에까지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괜스레 주눅이 든다. 남들의 눈에 내 행동이 얼마나 궁상스럽게 비쳐질까. 누가 볼세라, 해거름이 되고 사위가 껌껌해질 때까지 내처 기다리기로 한다. 그 알량한 체면 따위가 뭐 그리 대수라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하지 못할까.
지금껏 아내가 감당해 왔던 소소한 집안일들에 너무 무관심했었던 듯싶어 자책의 마음이 앞선다. 그러면서, 응당 그렇게 하는 것이라 여기고 도무지 고마운 줄을 모른 채 지내 온 지난날을 뉘우친다.
이제 가로 늦게 철이 드는가 보다. 고작 며칠간이지만, 아내의 부재는 나로 해금 여태까지 결어 왔던 생각의 틀을 다시 짜게 해 준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유행가 가사에서처럼, 누구라도 정말 있을 때 잘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가서 뼈저린 후회로 땅을 치지 않으려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