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문
오피니언칼럼
얼음의 색깔을 만지고 싶다
동화 한봉수  |  bo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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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1.03  10: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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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초등시절 미술 시간에 물 때문에 크게 낭패를 당한 것이 두 번 있다. 다시 부연 설명 하자면  한 번은 물 때문이고  또 한 번은 비 때문이다.
민족상잔의 한국전쟁과  그로인한 많은 전염병이 존재하던 시절을 어린 유년시절로 두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선진 문물을 남 먼저 깨닭고 대처로 냅다 달려간 몇몇 선두주자 그룹을 제외하곤,  많은 또래들이 춥고 배고품을  아플 만큼 아련한 추억들로  덕지덕지 달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춥고 마땅히 놀이 감이 없을  冬寒節 시절엔 그저 눈(雪)이 친구고  고드름은  약간 고급스런  장난감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주변 환경이 모두 놀이터였다고 하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체험마을의  관리인이 잘 다듬고 준비해둔 그런 귀족 같은 환경을 생각 할지 모르나,  우리네  시절은  겨울철이  땔감준비의 삶의 현장이었고,  그런 와중에 눈이라도 오면 쉬는 날이 되고,  또 몇일 후엔 고드름이 열리니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고드름이나 김(수증기)이나 물이 모두 한가지인데,  덥고 춥고의  차이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매우 신기해하면서도 깊이 생각할 아무런 기회나 호기심 유발의 동기를 갖지 못했었다.  
약간 생뚱맞은 이야기겠지만, 한때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의 중심이자, 국가의 대표자인 통치자의 따뜻하고 정겹던 모습을, 우리는 물로 비교하면서 직.간접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경험한 사연이 많아질수록,  물의 오묘하고 깊은 철학을 내 이 작고 약한 가슴으로 깨우치기가 소름끼치도록 어려웠지만,  그냥 ‘아하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것 보다 조금이라도 말하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본다.  
서두에 말한 낭패 중 하나는,  수영하는 모습을  ‘물놀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시작으로 그려 보았지만,  명색이 상급생이 된 5학년이라서 사실대로  느낀 것을  정말 잘 그리려고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채색을 하려니 물놀이는 물에서 하는 거란 생각이 온통 나의 생각을 다 잡아먹었는지 물색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겨우 생각해 찾아 놓은 것이 짙은 靑색이라서 정말 귀하게 어머니가 구입하여 준 스켓치 북에다 정신없이 파란 물색을 진하게 칠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도 아주 엉망으로 된, 난해한 상상화 그림이라기보다는 장난질 한 것처럼  되고 말았다. 촌에서 자라면서 언제 그림전시회를 갈 기회가 있었나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TV라는 영상매체가 있기를 하나,  간혹 마을 앞 개울가에 뿌옇고 커다란 천(纖維)을 화면으로 하여  영화라고 본 것도 흑백뿐이라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래도 걱정 어린  얼굴로 그림을 제출하는데, 선생님은 장난쳤다고 또 크게 실망했다고 하시면서 아주 성난 얼굴을 하셨다.  그후  나는 한 학년이 한 班(반)뿐인 관계로,  그 학기 내내  내 생각대로 쉽게 그림 그리기가 어려웠었다.  담임선생님이 안 바뀌었으니 말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지금은  철학관을 운영하고 계신 그분이  6학년 때까지  담임을 하셨으니, 나의 미술에 대한 흥미는 도저히  싹트지 않았고  지금도 그림엔 흥미가 없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여름 장마가 채 끝나기도 전인, 학기말  그리기 실기시험이  있었는데  또 비 오는 날의 풍경을 그리라고 하셨다. 지난번에 꾸중 들었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  우산을 받쳐 들고 나를 마중 나오신 엄마의 모습을 그렸다. 아주 정성을 다하여 엄마를 예쁘게 그렸다.
우리 어머니의 우산은 찢어져서, 당신의 웃옷까지 온통 젖게 하는 우산이었고, 나에게 주신 우산은 깨끗하였기 때문에,  내가 눈으로 본 것을 사실대로 그린다고,  찢어진 우산을 솜씨 없는 나의 재주로 그렸으니 좀 이상하고 괴상하긴 했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밑그림으로 그린 것이  연필 스켓치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검은 크레파스로 했으니 정말 가관이었다.
그런데  이때도 선생님은 또 장난했다고,  내 그림을  교실 바닥에  던지시고는,  소위 ‘우등생’이 반항했다고 나의 빰을 치셨고,  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심지어 울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모르면서, 그날 온밤을 어머님의 물수건 간호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교사의 직업이 추앙 받는 자리라 하기는 약간의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전 국민의 평균학력이  국졸도 채 못 되던 시절이니,  국가 정책이 교원 양성학교 시절은 벗어났으나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부임한 선생님의 존재는, 촌에서는 가히 예전의 고을원님을 방불케 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추억이다.  물론 당시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자애롭던 열의를 모두 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으시길.....
평생을  착하게만 살아오신 어머님은, 여든 두해를  살아오시면서, 아직도 내가 그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신다. 물론 알았더라도 우리 엄마는 아무 표정 없이  ‘괜찮다, 다 니가 잘 되라고 한길 끼다’ 하시곤  끝이었을 것이지만,  여하튼 아직도 모르고 계신다.
사십 년을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인생 경쟁력 저하 때문에,  그것도 아버님이 歸天(귀천)하시고 나서 어머님을 모시겠노라고 겨우 변명거리 하나 얻어서,  처자식 모두 인천에 남겨두고 나만 혼자 내려와서 ( 다행이  직장은 구했지만 ) 어머님을 모신다는 것이 영 모양새가 아니긴 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님을 모시는 것인지,  어머님이 오십 중반의 아들을 돌보는 것인지 혼돈되는 가운데 벌써 몇 년이 지나갔다.  정말 다행이도   금년엔  어머님이 인천 큰딸네와  철원의 작은 딸네에서 동절기만 지내시고 오시겠다며 상경을 하셨다.
여하튼  어머님이 안 계시는 고향집을 살펴보려 혹간 가곤하지만, 지난 주말에도 고향집에서 가까이 모셔진 先親(선친)의 幽宅(유택)을 둘려보았다.  발밑에 부서지는 살얼음(얇은어름)을 보면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의 경지를 깨우친 그분 보다는 엄청 적겠지만 두눈이  뽀얀 안개로 쌓이면서 나의 머리가 아프도록  무엇을 생각하며 느끼게 되었다.
물이 무엇일까?  모양도 자기 것이 없고.  색깔도 자기 것이 없고, 형태도 기체로, 액체로, 고체로  변화되면서 존재하고, 모양도 담기는 그릇이 원하는 것을  말없이 제공하고 있지 않는가?  색깔도 섞이는 염료에 따라 원 없이 만들어 주고  목적이 이루고 나면  온다간다 인사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가? 정말로 聖人(성인)들 처럼 말이다.
모든 생명체를 생명력을 유지 성장하게 하고, 심지어는 생명력이 적은 척박한 땅도  물은 주위의 여러 물질들을  서로 융화하도록 하여 유기질 풍부한 옥토로 바꿔주고는  정작 물 당신은 조용히 칭찬할 틈도 주지 않고 가버리더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은 정말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인 것이  분명한데  우리는 물을 너무 속단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서두의 그분은 가장 좋은 칭찬을 받았던 지도자였는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말(言)은 이쯤에서 이정표를 새로 찾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처럼 살아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싶은 것이다.
내 몸은 자연의 위치에 따라 늙어 갈지라도,  물처럼 살다보면  조금은 보람된 일들도 자주 만날듯하니,  이제라도 이 사실을 안 것이 천지신명 아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물의 정체를 다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닮기를 기도하고 싶다.  아니 몸부림쳐 깨닳고 싶다.  환도뼈가  어스려지도록  씨름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기에...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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