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겨 병원을 많이 다녔다. 지금도 다니고 있다. 그래도 특별히 효험을 못 보고 다니다 보니 양의·한의가 10여 곳이 넘게 돼 그만 병원 편력(遍歷)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양태도 통상적 인식과는 좀 다름을 알게 됐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아주 일부 의사들이 그랬다. 이상하게도 환자가 많을수록 더했다. 사람의 질병을 다스리는 기술을 일러 의술이라고 하는데 그 의술에 그쳐서는 안 되고 인술(仁術)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의사를 신문 칼럼에서 본 일이 있다. 의술은 사전적 의미로 병 고쳐주고 그 대가로 돈 받는 행위인데 단순히 그것만으로 끝나면, 마치 고장 난 기계 고쳐주고 그 수고비 받는 기사와 뭐가 다르겠냐고 그 칼럼은 부연(敷衍)하고 있었다.
그럼 인술은 뭣일까? 내가 감히 그 인술을 풀어낼 소양도 없고 능력도 안 되지만 내가 겪은 몇몇 사례를 들어보는 것이다.
무릎 관절을 다쳐 입원, 퇴원한 후 다시 아파 그 병원을 갔다. 입원 당시 그림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해 주었던 의사가 5,6개월이 지나도 낫지 않으니 왜 그러냐고 좀 자세히 물었다. 통증 부위가 위 아래 옆으로 옮아 다니기도 하고 그 정도가 몹시 아팠다가 또 어떤 때는 거짓말 같이 멀쩡하기도 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래서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얘기 끝나도록 얼굴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더니, ‘여기 왜 왔어’ ‘물리치료 하러 왔지’ ‘그럼 물리치료 하세요!’ 그게 끝이었다. 그래서 진료실을 나오며, 차마 들리게는 못하고 속으로만 히포크라테스가 울고 가겠다고 중얼거리며 나왔다. 이게 의술일까, 인술일까?
병원을 옮겼다. 내가 잘못해 덧났다고 말했다. 그 실수가 내 일생일대의 패착이라고도 했다. 의사는 금방 낫는 게 아니고 한 1년을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평생 아프게 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원죄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흠칫 놀라 뭐요! 했더니 그 ‘실수’가 원죄라는 것이다. 참 기가 막혔다. 그 원죄를 들먹이는 것이 마치 ‘약점 잡혔으니 너는 내 손안에 있다’로 들렸다. 현대판 ‘주홍글씨’였다. 이게 의술인가, 인술인가? 아니 상술인가?
한 한의원에 갔다. 의서(醫書)에 있는 침구 요법, 봉침, 약침까지 다 써 봤다고 하며 나보다 더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 애쓰는 모습이 바로 인술이구나 했다. 나도, 이놈의 신이 만든 몸뚱이 구조, 신이나 알까 하고 그 애쓰는 모습을 이해하는 듯이 말했다. ‘신의 영역’이라고도 했다.
양의나 한의나 효험 여부에는 관심이 없고 배운 대로, 교과서대로 치료만 하면 되는 듯이 보였다. 마치 수학 공식에 문제를 대입만 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 맹신한다면 그야말로 그것이 바로 매너리즘이다. 환자가 고통을 호소해도 그 타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모든 환자에게 ‘그렇게 하면 다 나아요…’라고 한다면 그건 의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 어느 한 의사는, 무릎 아픈 부위 보여 주려고 하니 볼 필요 없다며 그냥 치료만 해줬다. 하도 여러 곳 다녀 무릎도 관절, 인대, 힘줄 등이 있다는 것을 듣고 알았는데, 조금도 낫지 않아 좀 이상해 다음 날 접수에 가서 물었더니 인대가 아니고 관절을 치료했다는 것이다. 인대 손상으로 생긴 통증인데 그걸 묻지도 않고 치료를 했으니 이게 바로 전형적 매너리즘이 아닌가 감히 말해보는 것이다. 
  환자 하나하나가 의사 입장에서는 ‘임상실험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며 진료하는 의료인은 어디 없을까. 질병과 의사는 창과 방패로 서로 타도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세균·병원체가 돌연변이로 인간을 괴롭히면 의사는 또 그 질병과 사투를 벌이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 아닌가 한다.
  어느 직종이나 평생 공부한다 하듯이 의사도 예외일 수가 없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도 위장병 원인을 알기 위해 인분도 먹었다지 않는가. 내 희망 사항이 격에 맞지도 않는, ‘공자 앞에서 뭘 쓰는’ 격일까?
  어떤 땐 내 다리 하나 못 고치는 지금의 첨단 의술을 많이 원망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 사회에 꼭 필요한 인사가 뇌사로 인해 생물학적 수명만 연장하는 것과, 내 고통을 비교하는 것으로 위안을 얻기도 했다. 참 어처구니도 없는 비유이다. 내 어쩌다….
얼마 전 한 신문에 ‘대학병원 3분 진료’가 실렸다. 이 3분 진료는 환자들이 지어낸 말이 아니란다. 전국 국립대학병원의 환자 한 사람당 진료 시간이 평균 3분이라는 분석이 나온 이후 쓰는 말이라 한다.
이런 현실을 보다 못한 서울대병원 임재준 교수는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위해 초진 환자에 대해서만 ‘15분 보기’를 시작했다 한다. 처음엔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이해가 돼 정착돼 간다고도 하고 있다.
인간사회는 끝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가야 한다. 그러므로 의료계도 여기서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의 이 시대, 이런 임 교수 같은 ‘발상의 변화’를 아는 프론티어적 기수(旗手)가 필요한 시대는 아닐까 하고 나 혼자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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