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있다. 밥은 얼마 되지 않고 반찬의 양이 더 많다. 정성이 담긴 도시락이라 몸에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한 달에 한 두 번 이 곳에서 해설사로 근무하는 데 밥 사먹을 곳이 없어서 아내가 마련해준 도시락을 먹는다. 역사 깊고 인심 좋은 고령의 개실마을이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농촌체험 마을로서는 성공한 이곳은 옛날 한옥체험, 엿 체험, 두부 만들기 체험 등 서른 가지가 넘는다.
대구에서 아침 일찍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에 오면 오후 5시까지 관광객들에게 이 마을의 역사 및 전설을 해설해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수년전 퇴직 후 이 나이에 이런 일거리라도 있음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일주일에 두 세 번정도 고령에 오는데 대중교통이 편리해 관광하는 기분으로 6년째 다니고 있다. 혹자는 재직 시 기관장을 하던 분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다니는 데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아무 일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 보다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해설을 해주는 것이 건강상 해롭지는 않는 것 같다.
건강에도 좋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남을 의식하지 않고 다닌다. 그리고 해설사라는 일이 아무나 다 하는 일은 아니고 선택된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뿌듯한 자부심을 가질 때도 있다. 옛날 현직에 있을 때는 학교 급식이 없어서 아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쌌다. 고학년을 담임할 때는 점심 도시락하나로는 허기가 져서 간식도 함께 준비하곤 했었다.
학교 가까이에 살 때는 아내가 뜨거운 밥을 해서 학교에 까지 배달해주던 그 정성이 지금도 아슴아슴 생각난다. 큰 냄비에 칼국수를 삶아서 배달해오면 정성을 생각해 남기지 않고 다 비운일이 있다. 그리고 신혼 초에 아내가 반찬을 잘 못해서 심하게 싸운 일도 생각난다. 지금은 나라경재가 좋아 학교급식이 잘 돼있어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겠지만 옛날에는 공무원 부인이 아이들 키우면서 도시락을 싸는 일이 참 힘이 들었다.
예전에는 일본말로 도시락을 ‘밴또’라고 했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싸준 밴또를 허리에 차고 달리면 반찬과 밥이 뒤써 껴 비빔밥이 된 일이며, 학생시절 점심시간 까지 참기 어려워 두 시간 마치고 쉬는 시간에 까먹는 일이 비일비재 했었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이지만 늘 반찬 투정을 하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반세기 만에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으니 옛 생각에 젖어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궁핍해서 도시락도 싸 줄 수 없었던 시절, 엄마를 생각하고 추억의 도시락을 회상하면서 나는 오늘도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