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서서히 항구에 가까워지자 병풍처럼 섬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이 와락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늘빛 바닷물에 드리운 주변 경치의 음영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삐죽삐죽 치솟고 울툭불툭 튀어나온 바위들은 천하의 절경이라 일컬어지는 중국의 장가계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학부 시절 절친했던 동기 셋이서 부부동반으로 나선 울릉도 나들이 길이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제쳐두고 훌쩍 떠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지척의 곳을, 이런저런 잡사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수십 년을 내내 벼르고 별러 온 세월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저 하나같이 핑곗거리일 뿐, 오로지 용기 부족 때문이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이 좋은 데를 여태껏 가슴속에다 담아 두고 그리워만 했었다니 때늦은 후회감이 밀려든다. 고개를 젖혀 눈조리개를 좁히고 산꼭대기를 치어다본다. 순간, 절벽에 간신히 몸을 버티고 선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압도한다. 처음엔 소나무인가 싶었다. 그러다 다시 찬찬히 살피니 소나무가 아니라 향나무 아닌가. 마치 용이 다리를 엉버티고 몸을 뒤틀면서 하늘로 오르는 듯한 상서로운 형상이다. 그 장관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흔히들 가지가 축축 드리워진 기품 있는 소나무를 ‘낙락장송’이라고 일컫지만, 나는 이 휘늘어진 향나무를 ‘낙락장향落落長香’으로 부르고 싶다.
매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수천 년 세월 동안 질기디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은 도동항의 향나무야말로 ‘울릉도의 지킴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줄잡아 자그마치 이천 오백 살, 고작 백 년을 살아내기도 버거운 것이 우리 사람의 수명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 생존 기간인가. 그 가마아득한 나이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우리 땅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이 노거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느닷없이 평소 애송해 오던 시 한 수가 읊조려진다.

桐千年老恒藏曲(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시 가락을 지니고)
梅一生寒不賣香(매화는 일생을 힘겹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불현듯 이 인구에 회자되는 두 시구에다 나머지 두 구를 보태어 절구로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鷗日日孤樂其生(갈매기는 매일같이 제 삶이 외로워도 그 생을 즐기며)
香萬歲快守自分(향나무는 만년이 흘러도 기꺼이 본래 자리를 지킨다.)

 비록 어쭙잖은 글재주이지만 이렇게 읊어 놓고 보니, 어쩌면 얼토당토않은 것 같으면서도 비로소 기승전결이 완전히 갖추어진 시가 된 성싶기도 해서 늘 찜찜했던 마음이 흔흔한 기분으로 바뀐다. 울릉도에 와서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은 것은 도동항의 향나무를 닮은 울릉도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천 길 낭떠러지 바위틈에 몸을 기댄 채 오로지 하늘에서 내리는 몇 방울의 이슬로 생명을 이어가는 향나무를 보며 열악하기 그지없는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 온 울릉도 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읽어낸다. 작게는 나무젓가락 하나에서부터 크게는 굴삭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자를 뭍에서 들여와야 해서일까.
이곳 거주민들은 검소함과 절약 정신이 몸에 배여 있는 것 같다. 육지 사람들이라면 벌써 필요 없다고 버렸을 쓰레기조차 결코 허투루 생각하지 않고 생명을 불어넣어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킨다. 다 떨어져 해어진 신발에다 흙을 채워 꽃나무를 기르는가 하면, 빈 페인트 통으로 물바가지를 만들어 요긴하게 활용하기도 하는 지혜를 지녔다. 하나의 삶의 철학으로 굳어진 특유의 근검절약 정신을 나는 이곳 울릉도에 와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는 어쩌면 화산섬이라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그들만의 생존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울릉도 터줏대감인 도동항의 향나무는 수천 년 세월 동안 한 자리에 붙박여 이곳 토착민들의 삶의 애환을 말없이 지켜보아 왔으리라.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인생이 나고 꺼지고 나고 꺼짐을 되풀이하며 갈마들었을까. 그러면서도 울릉도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명이처럼 질긴 생을 이어오고, 향나무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억척같은 삶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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