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호에 ‘사진 얘기’를 하면서 아내 예길 몇 줄 쓴 일이 있다. 써놓고 보니 흔히 말하는 팔불출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아 또 적는다. 내가 도꼬마리 씨같이, 솜사탕 같은 깃을 단 민들레 씨같이 아내에게 불시착해 50여년 아내 고생을 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에게 불시착한 확신 같은 게 있다. 시장생활을 할 때였다.
우리 집 사정을 훤히 아는 무속인 한 분이 있었는데 만나기만 하면 허물없이 농담도 하고 ‘인생’ 얘길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가 됐다. 꼭 무속인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때로는 좀 식견이 있는 담론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랬는데 어느 날 그는 날 보고 ‘당신은 당신 아내 덕으로 이만큼이라도 산다’고 무속인 특유의 훈계조 언사로 불쑥 내뱉는 것이었다. 마치 작심이나 한 듯한 어조였다.
뜻밖에 일격을 당하고 보니 어이도 없었고 미쳐 대응이거나 반론을 제기할 새도 없었다. 내가 의외로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던지 그는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그를 보고 의도적으로 ‘어허! 그럼 난 한강으로 가야겠네…’ 했지만 내가 과잉반응을 했었는지 조금 머쓱해하며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 시절 자살을 고뇌는커녕 뜻 없이 그렇게 농 삼아 빗대기도 했었다. 그 이후 그와는 거래도 끊어졌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신수나 토정비결 정도는 한 번씩 보던 때도 있었다. 그런 걸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재미 삼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분복이 남만큼 뛰어나지도 않았고 좋은 괘는 보지 못했다. 아직 젊었으니 무시 일변도였지만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 기억은 지금도 남아 있다.
다시 조금 상기된 기분을 갈아 앉히고 생각해 보니 그 무속인이 제대로 본 것만 같았다. 내게는 이정도의 근근도생도 내 분복의 전부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제 능력이나 깜냥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지도 모른다. 나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나이 되도록 살아오는 동안 잘한 것보다 잘 못해 후회를 하는 것이 더 많다.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그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이 인생길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름으로 잘 선택했다고 했지만 그 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실패라고 나 스스로 판단하기도 했었다.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니다.
내 분복이 이것밖에 안 되니 아내에게 미안하기만 한 것이 오늘의 내 삶이다. 아내의 주갑(周甲)을 맞던 해 그때 써논 소회가 있어 이것으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어볼까 한다.
 
 구덕초(나의 아내)의 불시착

참 용케도 버티어 주었소 / 지분향(脂粉香)이 채 가시기도 전, 아니 밸 틈도 없이
삶이라는 짐을 지웠소 / 황량한 들판의 구덕초(九德草) 같이 비바람 찬 서리 그냥이었소.

고이 품은 구덕초의 꿈은 눈이 부시었소
끝없이 너울너울 구천(九天)을 날으다
천의(天衣)의 긴긴 여행 
내게로 와 나래를 접었으니 불시착이었소.

인고(忍苦)의 세월이었소
겁(怯)이 몇인지 알 길 없어도
무시무종의 연(緣)이 / 원죄처럼 다가 왔었나 보오.

중천의 해는 기울어 가는데, / 아직도 갈 길 먼데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섰던 인고의 구덕초여!
이제는, 비바람 찬 서리 걷게 하고
모래 바람 걷으우게 하리다
내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엷은 햇살이오나
심지 돋우어 남김없이 태우오리다
석양이 질 때면 계명성(啓明星)이 뜬다지 않소. 

  
※구덕초 - 아홉 가지 덕을 지녔다는 민들레의 별칭. 나쁜 환경도 견뎌내는 인忍, 뿌리가 잘려도 새싹이 돋는 강剛, 꽃이 차례로 피는 장유유서의 예禮, 여러 용도로 쓰이니 용用, 꽃이 많아 벌을 불러들이는 덕德, 줄기를 자르면 흰 액이 젖처럼 나오므로 자慈, 약으로     쓰면 노인의 머리를 검게 하는 효孝, 흰 액은 종기에 효험이 있다는 인仁, 바람 타고 멀리 날아가 후대를 만드는 용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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