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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여니 화사한 햇살이 교실 안 가득 살포시 내려앉는다.
새끼제비 여섯 마리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어미제비의 먹이를 서로 받아먹으려고 아우성들이다.
“안녕? 선생님은 너희들이 보고 싶어 죽을 뻔 했단다.”
“안녕하세요? 저희들도 선생님을 많이 기다렸어요.”
초등학교 3학년 여섯 명의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내 양팔에 매달린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이럴 두고 행복의 눈물이라 했던가. 콧등이 찡해온다. 행복한 기쁨이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소현이, 빨간 테 안경을 쓴 인형같이 예쁜 지수, 왕방울 사슴 눈을 가진 하늘이, 가재미눈으로 흘겨보는 새침 뜨기 세빈이, 곱슬머리에 연탄재 피부를 자랑하는 지영이, 언재나 미소를 잃지 않는 팔랑귀 성재, 내가 가르치는 여섯 명의 꼬마천사들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교육 외에는 꿈도 꾸지 못하는 다솜이들이 팽이버섯처럼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는 곳, 대구 남구 그루터기 아동센터이다. 내가 이 곳에 발을 들여놓은 지 열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몇 해가 지난 느낌이다. 공무원 연금공단 대구지부의 배려로 퇴직한 지 4년 차에 그루터기 아이들을 만난 건 나의 큰 행운이었다.
소외된 결손 가정이나 다문화 아이들이라, 선생님께 상처를 준다고, 담당자에게 소개받을 때는 대면 대면했으나, 손자같이 대하고 보듬어 주니, 시나브로 정이 들어 조손(祖孫)같은 관계로 나날이 즐겁다. 지금은 매주 수. 목요일이 자꾸만 기다려지는 것은 왜일까.
맹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중에 하나로 제자를 가르치는 기쁨이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배우는 기쁨도 있지만 가르치는 기쁨 또한 그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사십 여년 중 절반을 관리자로 지냈으니, 분필을 잡지 않은 해가 4 반세기가 훨씬 넘은 것 같다.
청년교사시절 특수교사 자격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지적발달 장애아동을 5년 동안 가르쳐온 지난 날, 똑똑한 제자는 아닐지라도 늘 음지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가르치던 일들이 기억 속으로 스멀스멀 다가온다.
교육이란 무엇이며, 내가 진정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모든 것들이 과연 바람직했었던가, 물음표가 생긴다. 학력향상에 치우치다보면 인성교육이 문제가 되고, 인성교육에 열중하다보면 학력신장에 소홀하게 된다.
교육이란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고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먼 훗날 나의 손주들이 장성해서 우리 할아버지는 훌륭한 교육자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 아이들을 내 새끼 같이 따뜻하게 보듬어 주리라.
학력향상을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가르쳐야겠지만, 어릴 때부터 바르게 자라도록 인성교육 또한 소홀이 해서는 안 된다. 여섯 명 모두가 다 잘 할 수는 없는 것, 어제 기말고사에서 소현이는 만점을 맞았다고 좋아하지만, 성재는 하위 점수에 가까우니, 가르치는 나로서는 희비가 쌍곡선이다.
컨닝에 능숙한 성재는 시험지만 들면 남의 것을 훔쳐보는 나쁜 습관이 몸에 베어있다. 조용히 불러 타일러 보지만 타성에 젖어 좀처럼 벗어나기가 힘이 든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인성교육에 치중하기로 했다. 몽당연필을 훔쳐온 자식에게 잘 했다고 칭찬해주던 아이가 커서 큰 범죄를 저지르는 강도가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남의 답을 훔쳐보는 것은 강도가 도둑질하는 거와 같다고 누누이 강조해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아이는 나와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긴 노하우는, 수업태도가 좋으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니까, 학습태도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난히 귀신이야기에 매료된 아이들은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귀신이야기로 주의집중을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였다. 간혹 수업시간 중에 졸음이 오면 십분 간 오침시간을 주는 방법도 효과가 있었고, 우리 선생님이 최고라고 야단들이다. 아침밥 한 끼만 집에서 먹고, 점심은 학교급식으로, 저녁은 그루터기 식당에서 먹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교육내용도 옛날 우리 어렸을 때에 비하면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사실도 알게 되었고, 진짜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교실 창문 가득히 내려앉은 햇살은 서산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여섯 마리 새끼제비들을 가르치는 큰 기쁨은 감히 이 나이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나는 행복이 가득한 교실에서 조그마한 변화에 큰 보람을 느끼며,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련다.<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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