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면 님이 돼 만난 사람도/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이렇게 이어지는 어느 유행가가 한동안 세상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나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었다. 비록 인스턴트커피 같은 대중가요이긴 하지만, 노랫말이 주는 의미를 음미하면 할수록 세상사의 깊은 이치가 그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아서였다.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님과 남은 실로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생판 낯모르던 두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만나, 날이 가고 달이 흐르면서 시나브로 연정이 싹트면 님으로 발전한다. 하루라도 못 보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나고, 한시도 함께 있지 않으면 그리움에 몸부림이 쳐진다.
하지만 그렇게 죽고 못 살 것 같던 연정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느새 돌변해 도로 남이 돼 버리는 일이 항다반사이다. 흔히들 돌아서면 남이라 하듯, 남이 님이 됐다가 님이 다시 남이 되는 데는 그리 복잡한 과정이나 절차 같은 것이 필요치 않다. 그저 좋아지고 싫어지는 마음 하나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이런 감정은 대개 분별심의 작용에 기인한다. 불가佛家에서는 분별심이 일어나는 원인을 이 마음 안에서 찾는다. 그건 어쩌면 선입관에서 생길 수도 있고, 어쩌면 편견에서 생길 수도 있다. 아니면 고집에서 연유할 수도 있겠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 입구에는 독일 태생의 화가였던 루벤스가 그린 <노인과 여인>이라는 작품 한 점이 걸려 있다. 한 젊은 여인의 젖을 물고 있는 늙수그레한 남자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피골이 상접한 그림 속 주인공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광명을 위해 싸운 독립투사이다.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서 감옥에다 가두고 ‘음식물 투입 금지’라는 형벌을 내린다. 사람에게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처사인가. 
조국 독립에 평생을 바친 애국자는 검은 수의를 입은 초라한 몰골로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린다. 어렵게 어렵게 면회를 온 딸이 눈물로 묻는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그 아버지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우유 한 잔이 먹고 싶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녀의 수중에는 우유 살 돈 한푼이 없다. 궁리궁리 끝에 그녀는 결국 우유 대신 자기의 젖을 물리기로 한다. 생명이 사위어 드는 아버지를 위한 지극한 효심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처음 그림의 내막을 모르고 바라볼 때는 아무라도 포르노 수준의 저질이라며 혹평을 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사연을 알고 나면 누구도 그 그림 앞에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무조건 외설이라고 여기는 것은 분별심을 갖고 그림을 대하기 때문일 게다. <노인과 여인>이 외설이 아니고 위대한 예술작품임을 깨달을 수 있음은 분별심을 내려놓고 바라볼 때이다. 
사람들은 내남없이 삶의 도정에서 본질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아집과 교만, 무지에서 오는 편견으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이것은 오로지 분별심에서 연유한다. 이 분별심이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을 고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눈 밝은 선지식들은 분별심을 없앨 때라야만 비로소 참을 보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보다.
내 이날 이때까지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해서 판단을 그르친 적이 대체 얼마나 많았던가. 만일 그림에 숨은 사연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미술관에 들러 <노인과 여인>을 볼 기회가 있었더라면, 외설도 이런 외설이 어디 있을까 보냐며 세차게 몰아붙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마음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이 지긋지긋한 분별심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