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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비애
손 원 수필가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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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5.14  16: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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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와 거미는 암컷이 교미 중인 수컷을 잡아먹는다. 사마귀의 교미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덩치 큰 암컷이 작은 수컷과 교미를 하다가 끝날 때쯤이면, 수컷을 씹어먹기 시작한다. ‘성적 동족 포식’(Sexual Cannibalism)이다. 교미 중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은 더 건강하고 많은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공작새는 수컷이다. 멋진 외모로 암컷을 유혹한다. 몸길이의 두 배가 넘는 아름다운 꽁지 때문에 날지 못하고, 그렇기에 천적의 눈에 띄어도 달아날 길 없는데도 오직 ‘인기’를 위해 아름답게 진화했다. 수컷 양들은 암컷에게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피가 날 정도로 서로 머리박기를 한다. 수탉은 볏이나 육수(肉垂)가 클수록 암컷을 매혹하기에 유리하지만, 이로 인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많아지면 면역계 기능은 약해진다. 
결국 수컷들은 생명을 내놓으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인기를 얻으려고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다.  인간이나 동물 세계에서 수컷은 가족을 부양하고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 중에 하나다. 세월이 흘러 늙고 힘이 없어지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 어느 날 TV를 통해 탄자니아 세렝게티에서 사자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았다. 수사자 한 마리가 십여 마리 안팎의 암컷을 거느린다. 나무 그늘에서 잠을 자거나 새끼들과 장난치며 놀다 암사자들이 사냥해 오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제일 먼저 배를 채운다. 세상에서 이렇게 좋은 팔자가 있나 싶지만 보이는 것만큼 편안한 것이 아니며 암사자보다 훨씬 고달프고 치열하다고 한다. 암사자는 태어난 무리에서 엄마, 이모, 사촌들과 평생을 함께 지내며 보호를 받지만, 수사자는 태어난 지 2년이 지나면 어미에 의해 무리에서 쫓겨난다. 이때부터 혼자 사냥하고 자신의 무리를 가질 때까지 다른 수사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전체 5%만이 우두머리가 된다고 한다. 젊고 패기 있는 수사자들이 끊임없이 도전해 오기 때문에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5년에 불과하다. 이런 권위를 누리다 왕좌에서 밀려나 무리에서 떠나게 되면 사냥하기가 쉽지 않다. 들개나 하이에나 무리에게 린치를 당할 수도 있고, 악어에게 물리거나 상처를 입어 제대로 먹지 못하면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흙을 뒤져 개미를 잡아먹다가 혼자 쓸쓸히 죽어간다. 갈기를 휘날리며 왕자 노릇을 할 때는 멋있는 것 같지만 야생의 수사자는 15년만 살아도 장수한 것이란다. 동물 세계에서 늙은 수컷은 외부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고달프다 못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인간의 수컷들은 어떠한가?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랄 때만 해도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했다. 기침 한번에도 온 집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으며, 장남은 장래의 가장이라는 지위로 아버지와 겸상하며 쌀밥을 먹었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이면에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봉제 공장에 다니면서 오빠나 남동생을 대학까지 보낸 누나나 여동생의 희생이 뒤따랐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나이가 들어 집으로 돌아오자 설 자리가 없다.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세월에 토사구팽당한 아버지의 뒷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고 장가보내느라 한평생 취미 생활도 못 해서 시간은 많지만 놀 줄을 모른다. 점심시간에 인근 공원에 가면 허름한 잠바에 모자를 쓰고 구부정한 허리와 축 처진 어깨에는 배낭을 메고 한 끼 해결하려고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도 이들이다. 할 일이 없으니 담장 둘레에 놓인 장기판에 둘러앉아 구경하거나 실버영화관에서 영화 관람하며 그럭저럭 하루를 보낸다. 집에서 식사하는 끼니 수에 따라 영식님, 일식씨, 두식이, 삼시세끼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며 밥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시대가 됐다. ‘이사할 때 떼어 놓고 갈까 봐 강아지를 안고 조수석에 앉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나라마다 나이 든 남편을 비하하는 농담은 넘쳐난다. 일본에서는 ‘비 오는 가을날 구두에 붙은 낙엽’ 신세로 비유된다. 아무리 떼 내려 해도 달라붙는 귀찮은 존재라는 뜻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여성의 72%가 늙은 남편이 부담스럽다’라는 여론조사를 얼마 전 발표했다. 나이 든 남성이 점점 더 내몰리는 느낌이다. ‘이젠 아내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신세가 되었구나!’하는 처량한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시며 달래보려 해도 누구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쳐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인 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이 2015년 기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8.8명보다 훨씬 높아 부동의 1위다. 고분고분하고 순박해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을 무서워하고,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던 효부 시대는 머나먼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어떤가? 퇴직하고 틈틈이 글쓰기를 즐기고 있다. 출가한 아들딸도 가끔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 밥 먹으면서도 아내로부터 눈치를 받지 않는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지만, 여자의 마음이 갈대인지라 어떻게 될지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요즘엔 청소기 돌리는 것은 도맡아 하고 있다. 쓰레기나 재활용품 버리는 것도 나의 몫이다. 설거지는 해 달라는 소리가 없어도 스스로 하기도 한다. 
자발적으로 하고 있지만,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시대가 됐다. 무리에서 쫓겨나 앙상한 뼈대에 가죽만 걸친 채 사냥할 힘이 없어 흙을 파 개미를 잡아먹다 죽어가는 수사자처럼 되지 않으려면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눈치 주지 않고 잘 챙겨주는 아내에게 좀 더 친절하고 다정스럽게 해야겠다. 
자식들에게도 권위 의식을 벗어 던지고 먼저 전화하고 살갑게 대해야겠다.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이야 오랜 세월 동안 수컷의 비애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여권이 신장되고 남녀평등사회가 됨에 따라 남자들의 위상은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다.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다. 과거의 역할이나 환상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시대에 맞추어 스스로 살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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