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포浦 자 들어가는 이름 지닌 바닷가 마을치고 경관이 아름답지 아니한 곳이 있을까. 만리포, 다대포, 몽금포, 화진포……, 다들 제 나름의 풍광을 자랑하는 명승지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감포甘浦 앞바다도 그랬다. 활처럼 휘어졌다 젖가슴같이 봉긋하게 튀어나와 굴곡을 이룬 해안선이 좋았고, 허리를 구부린 채 일제히 바다 쪽으로 방향을 틀고 선 한 무리의 바다소나무가 좋았고, 다음 날 출어出漁를 위해 총총한 집어등集魚燈의 불을 내린 채 나른히 졸고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모습이 또한 좋았다. 방금 물질을 끝내고 뭍으로 올라오는 해녀들의 물기 머금은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풋풋하고 신신했던가.
큰아이가 막 세 살이 나던 때였으니, 그러니까 햇수로 따져서 서른 해쯤 전이었던가 보다. 우리 가족은 그해, 여름도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들던 팔월 하순 무렵의 어느 날, 고향의 부모님을 모시고 감포 앞바다를 찾았었다. 빼어난 풍광에 반해 지난날 몇 번씩이나 가 본 적이 있는 한적한 해안가 마을이다.
공동어시장을 벗어나 한 반 마장쯤 떨어진 방죽가에서, 우리는 자동차를 세웠다. 문짝을 밀치고 한쪽 발을 땅 위로 내딛는 순간, 잔뜩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비릿한 갯내음을 풍기며 농익은 무화과 열매처럼 끈적끈적한 촉감으로 살갗에 전해져 왔다. 먼 수평선에다 시선을 준 채, 모두들 서너 차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잠시 탁 트인 바다 풍경에 취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이가 동그랗게 눈을 치켜뜨고는 앙증맞은 손가락을 들더니 먼바다 쪽을 가리키면서 느닷없이 어눌한 입놀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암 많~다!”
아이는 거침없이 넘실대는 그 한량없는 바닷물을 몽땅 마실 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세 살 아이다운 그 천진난만한 발상에 모두 손뼉을 치며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이의 할머니는 
“그래, 아이고 요 내 새끼, 아이고 요 내 새끼!” 
하며 연신 손자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볼을 비비셨다. 당신의 마음에는 그런 앙증스런 말을 주워섬기는 세 살배기 손자가 무척이나 대견하게 여겨지셨으리라. 생각해 보니, 물안개처럼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지난 시절의 참 행복한 한때였었던 것 같다. 
손자 사랑도 어쩌면 내림인가, 지난날 내 할머니가 그러셨듯이 아이의 할머니 또한 당신의 맏손자에게 자별한 정을 쏟으셨던 걸 보면. 어머니는 손자가 이따금 당신 앞에서 재롱을 부릴 때면, 언제나 감포 앞바다에서 했던 아이의 그 말을 웃으며 되뇌곤 하셨다. 
“아, 암 많~다! 아, 암 많~다!”
한창 어른 따라 말을 배워 가고 있을 시기여서 아직은 어눌하던 손자의 그 혀짜래기 발음이, 당신의 마음에는 그리도 이쁘게 여겨지셨던가 보다. 노래처럼 곧잘 흉내를 내곤 하시던 어머니의 그 웃음 섞인 음성이 꼭 어제 일처럼 짠해 온다. 당신 생전에 남기신 하고많은 말들 가운데 오늘따라 유달리 이 한마디가 어째서 가슴 깊이 파문을 남기며 내게 속울음을 울게 만드는 것일까.
이따금 번잡스럽고 뒤숭숭한 세상사로 마음 한구석이 울적해질 때면, 어머니의 그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를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금 들어보고 싶어지곤 한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팍팍한 일상에서 적잖은 위안이 되고, 그러면서 삶에 용기가 솟는다. 
아! 그리운 그 이름,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