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울렁거림이 심한 날은 바다를 찾는다. 무한 창공을 거침없이 비행하는 갈매기의 유영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간단없이 뒤말리며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해조음의 교향악에 끌려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저 멀리 가물거리는 수평선의 침묵에서 흐트러진 심사를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평선은 가장 완전한 평등이다. 높고 낮은 육지의 산봉우리들이 하나같이 서로 제 잘났음을 다투고 있다면,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은 모두가 똑같이 목소리를 낮추어 무애한 원융圓融을 이루고 있다 하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수평선은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원숙한 부부의 모습이다. 
신혼 시절 부부가 처음 보금자리를 이루었을 땐, 타고난 개성의 차이가 빚어내는 거친 풍랑으로 출렁거림이 끊이질 않는다. 이름해 사랑싸움이다.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힘겨루기다. 그 티격태격하는 짜그락거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가 는다. 
그것은 거센 파고를 이루는 물살이다. 물소리가 높아 가듯 목소리가 커져간다. 어떨 땐 금방이라도 깨어져 버릴 것처럼 요란스러운 파열음을 낸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다툼은 꼭짓점을 찍고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납던 물살이 차츰차츰 잦아든다. 시나브로 역할 조정이 돼 간다는 방증이다. 
도도하던 자존심은 죽고 조금씩 서로의 영역으로 편입이 되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화해의 기류가 감지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추어줄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한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싹트고, 그에 따라 팽팽하던 긴장의 끈은 시나브로 늦추어진다. 
그리고 마침내는 수평선처럼 잔잔해져서 완전한 평형을 이룬다. 
두 사람 사이에 비로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피워낸 평화의 꽃이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서로 닮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랜 나날들을 함께 지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얼굴 모습뿐 아니라 성격이며 사고방식이며 취미 따위가 같아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둘은 질병까지 비슷한 유형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논리인 성싶기도 하다. 
수십 년 세월을 각기 다른 환경을 먹고 커 나온 부부가 처음부터 호흡이 일치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같은 집에 살면서 매일같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 습관에 길들여지다 보면 저절로 닮은꼴이 되는 게 아닐까. 
이처럼 서로 닮는다는 것은, 울렁임이 심했던 두 마음을 조율함으로써 수평선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그렇다. 수평선은 큰 하나이며,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보이지 않는 하나의 수평선 만들기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