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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의 탄생
김 태 호 수필가 / (전)고령교육장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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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7  10: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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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난한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난 조셉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목장에서 양이 울타리를 넘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을 했다. 당시 목장의 울타리는 철사를 빨랫줄 모양으로 연결시켰거나 말뚝을 박은 것이 고작일 뿐이었다.
어느 날, 조셉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양들이 철사로 친 담을 넘어 근처의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요. 철사에 가시를 붙이면 양들이 뛰어 넘을 수 없지 않을까요?”
아버지는 아들의 착상에 재미를 느끼고 이튿날 목장으로 갔다. 미리 준비한 짧은 철사를 담 여기저기에 붙여 놓았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시철사, 즉 철조망이 탄생됐다. 
철조망이 처음에는 담을 치는 데만 사용되었으나 점차 도난 방지용이나, 군대의 방어용으로 쓰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사용된 철조망은 전쟁에 사용된 포탄보다 몇 배나 많았다고 한다. 
조셉 부자가 17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금은 11명의 공인회계사가 일 년이 걸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이었다. 한낱 시골마을의 조그마한 대장간에서 이렇게 부를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가시달린 철사, 즉 철조망이라는 간단한 신제품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었다. 

위의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아무리 어려운 경지에 몰렸을 때도 고민하고 연구하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 생각난다. 소년의 철조망 아이디어 하나로 거액의 돈을 획득한 이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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