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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원의 무게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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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3  11: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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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꼬박 잘 가던 손목시계가 조금씩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딱 걸음을 멈추었다. 아내한테서 여행 선물로 받은 지 채 돌시도 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새것이랄 수 있는 애장품이다. 그새 고장이 났나 싶어 좌우로 서너 번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초침이 겨우 몇 발짝 움직이는 듯하더니 더 이상 못 가겠다며 다시 그 자리에 서버린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수밖에 별 뾰족한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읍내 오일장이 열리는 날, 오래간만에 핑곗거리 삼아 장구경도 할 겸 수리점을 찾았다. 즐비하게 늘어선 점포들 사이로 ‘복음당’이라는 간판을 단 시계포가 눈에 들어왔다. 복음당, 복음당, 복음당, 무슨 주문이라도 외듯 연신 중얼거리며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한자漢字를 병기해 놓지 않아 분명한 의미는 모르겠으되, 어쩐지 복된 소리〔福音〕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시계의 뒤판을 열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금세 진단을 내린다. 고장은 아니고 약이 다 돼서 그러니 건전지만 갈아 끼우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작업이 끝났다며 내어준다.
기분 좋게 시계를 건네받으면서, 나는 수고비가 얼마인지 물었고 주인으로부터 사천 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만일 심각한 고장이어서 수리비가 많이 나오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대금을 치르려고 지갑을 찾았다. 하지만 아뿔싸! 안주머니가 휑하니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다른 주머니에다 넣어 두었나 싶어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져 보아도 동전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낭패가.
“아이구, 어쩌지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 보니 그만 지갑 챙기는 걸 깜빡했네요. 아내가 지금 요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있는데, 가서 받아다 갖다드리면 안 될까요?” 여차저차 난감한 상황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인의 입에서 칼로 자르듯 지극히 사무적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시계 여기 맡겨 놓고 돈 가져와서 찾아가세요.”
더 이상 궁상맞은 변해辨解로 사정을 늘어놓는 건 알량한 자존심이 용납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응대를 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결국 주인이 요구한 절차를 밟아 수리비를 지불한 뒤에야 시계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장꾼들 틈에 섞여들면서 슬쩍 뒤를 돌아다보았다. 수리점에 내걸린 간판 쪽으로 다시금 눈길이 갔다. 순간, 불편했던 심사를 애써 주저앉히며 사천 원의 무게를 저울질해 보았다. 그깟 사천 원에. 아니지, 자그마치 사천 원인데. 누군가에게는 채 짜장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액수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 온종일을 벌어도 미치지 못하는 고된 노동의 대가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사람의 형편이라는 것이 이처럼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설사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버젓한 점포를 열고 있는 사장이, 그것도 복음당이라는 이름의 가게에서…….
오늘 나는 과연 복된 소리를 들었는가. 아니, 내가 복된 소리를 들을 만한 말을 하였는가. 혹여 시계포 주인의 눈에 비친 내 행색이 단돈 몇 천 원도 떼어먹을 정도의 위인으로밖에 보이진 않았던 모양인가.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지금 같은 세상에, 아니 그래 그걸 믿어 달라며 양해를 구했던 내가 너무 순진한 건가, 아니면 무지렁이 같은 건가. 뒤죽박죽 엉클어진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가게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상호를 복음당이라고 지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줄곧 복음당이란 그 이름과 그의 손님맞이 방식 사이의 상관성 여부에 대해 곰곰이 씹고 또 되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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