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대신 지도를 펴라는 대표 지성인 이어령이 생각나는 새해지만 또 한 해가 시작돼 새 달력을 걸었다. 이 달력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생뚱맞지만 갑자기 궁금해진다.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로부터 중국의 역법(曆法·달력 만드는 법)을 쓰다가 세종시대(1442년)에 와서 중국과 한반도의 위치 차이로 인한 시간 오차를 개선한 역법을 만들었으니 세종이 창안한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내용은 모르고 신문 기사만 보고 씀)’으로 만든, 우리만이 쓰는 독자적 책력(冊曆) 즉 달력이다. 이건 대강 알고 있었지만 한 가지 새로 안 것이 있다. 그것은 지금은 주 7일 중 하루 휴일이지만 그땐 매월 순휴(旬休)라고 하며 열흘에 한 번 쉰다고 했으며 그걸 삼가일(三暇日)이라 했다 한다.
이 책력은 궁중에서 만들고 임금님이 하사하는 귀중품이었다. 처음에는 서운관에서 관활하다가 세종 이후는 관상감에서 선물용으로 배포했는데 이를 반사(頒賜)라 했다. 그래서 관상감 소속 노비가 관인을 위조해 사사로이 책력을 찍었다가 유배를 가기도 했다 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양력 날짜가 적힌 달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5년 고종이 음력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공포하면서 음력 날짜 아래에 양력 날짜를 적은 데서부터 시작됐다. 그때까지는 한자로 연월일을 표시했다가 아라비아숫자가 나오는 근대식 달력은 193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 보급됐다 한다.
6·25 전후 한 장짜리 달력(열두 달)도 없을 때 어른들은 책력을 사서 보았다. 설을 맞아 토정비결과 함께 길흉화복 등을 점을 치고, 동지를 지나 입춘 등 24절기를 보고 그 해 농사의 흉·풍을 예단하던, 농업사회의 전형을 보이던 때도 있었다. 그 책력은 한자로 되었고 문맹이 많을 시절이었으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사랑방에서는 그걸 보는 것이 하나의 시대상이었다.
그런데 새해 새아침 새로 내건 달력 보기가 몹시 싫었다. 금년만 그런 게 아니라 ‘매년이 그랬다’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왜 그럴까? 빈 가슴으로 한 해를 보냈고 또 빈손이 될 듯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다시 말해 금년이라고 별게 없을 것이니 말이다. 내 이 서푼짜리 지식이지만 그 산실(창고)은 신문이다. 그러나 새해 1월1일 신문은 안 본다. 거기 가슴을 찌르는 ‘신춘…’가 있기 때문이다.
매년은 아니지만 지난 세월동안 열댓 번 정도는 ‘얼뜬 짓’을 했으나 번번이 시쳇말로 ‘패싱’이었다. 그 영예의 ‘대과급제자’들의 얼굴 가득 희색을 보기가 싫었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맘 편하다는 말이다. ‘선 무당 뭐 나무라듯’ ‘나’는 돌아보지 않고 그 신문만 외면하는 좀팽이가 돼버렸다는 말이다.
‘신춘…’뿐만 아니라 장르 구분도 없이 여기저기 지척거렸지만 모두 낙방이었다. ‘쓴잔’도 아니고 심심한 맹탕이었다. 제대로 노력도 않고 ‘열매’만 바라다 이 꼴이 된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아니나 달라 내게 이 정곡을 찌르는, 어느 칼럼리스트의 글을 봤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데도 성과가 없다고 불평만 하는 것은, 마치 영하 1도 이하로 내려가야 얼음이 어는데 영상 1도쯤 노력해 놓곤 왜 얼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예외 없이 작년에도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끼적였지만 역시 허사였다. 철학은 배울수록 더 어렵다더니 문학(이 語義를 여기 이름 붙일 깜냥도 안 되지만)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몇 날 몇 달을 두고 아침에 쓰고 저녁에 고치고, 다음 날은 또 바꾸고 했지만 판정패였다. 저명한 문필인도 볼 때마다 고치고 이른바 퇴고(推敲)는 100번이 기본이라는 얘기도 듣기는 했다.
사실 응모자 400여 명에서 쉽게 1등을 하기란 조선시대 대과 급제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땐 합격도 ‘갑과’ ‘을과’ 등 등급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1등뿐이니 그 어려움은 불문가지다. 바늘구멍의 어려운 산술적 확률(1등)로만 가려낼 것이 아니라, ‘자칭 문학애호가’인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한 번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하는, 참 허망한 기대를 했던 것도 숨길 수가 없다.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 ‘이 정도 글이면 이번에야…’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허망한 글 그 결(結)을 적는다.

《…만인이 다 좋아하는 꽃, 나도 좋아한다. 그러나 내 집에 함께 사는 ‘80년대생 꽃’은 그럴 수도 없으니 이 이율배반의 고행을 어찌 감당하며, 빈 하늘만 하염없이 봐야 하는 일은 언제 끝이나 날까…!?》

더 저급하게 말하면 ‘거기서 거긴데…’ 그 옥석을, 그 진수를 법원의 상징인 천칭(天秤)이 있어 가렸을까. 심사할 때는 기명(記名)인가, 스크린인가. 심대한 오욕적 폄훼가 되겠지만 그냥 ‘심사자 맘대로 하는 건 아닌가’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했다. 나름으로 기대했던 희망이 무너지니 ‘좁쌀, 소인배…’의 온갖 옹졸한 생각을 되뇌는, 참 서글픈 내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래도 곧 죽어도 ‘될 성 싶은 나무…’의 실낱같은 희망을 버릴 수 없으니 이 ‘반편이’를 어쩔꼬! 새해가 밝은 지도 한참 지났지만 고질병 ‘신춘…’은 또 언제 유령처럼 내 앞에 나타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