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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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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31  09: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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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샛노란 단풍이 지난밤 가을비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여름내 무성한 잎을 달고서 싱싱한 젊음을 자랑하더니 어느새 갈 길을 서두른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 듯 거리가 한결 환하다. 울울하던 마음속마저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평소 어쩐지 세상이 예전에 비해 많이 어두컴컴해진 것 같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연구기관에서 낮의 밝기가 요 몇 십 년 사이에 십 분지 일가량 줄어들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측정한 자료가 그렇지 체감하는 지수는 이보다 훨씬 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웬만큼 맑은 날이라도 실내등을 켜지 않으면 아니 되는 형편이니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밤이 낮의 밝기를 잠식해 버린 탓인가. 낮이 이렇게 어두워진 반면 밤은 예전에 비할 바 없이 밝아졌다. 흔히 하는 말로 대낮같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이다.
휘황찬란한 밤풍경은, 깜깜해서 오히려 빛났던 소중한 것들을 삼켜 버렸다. 그로 인해 푸르른 하늘의 선명한 구름떼며 아기 눈망울처럼 초롱초롱한 별빛이며 구슬을 흩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은하수를 잃고 말았다. 뱃길을 인도해 주는 등댓불, 골목길에 내걸린 청사초롱, 외딴집의 따스한 불빛, 이러한 것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지난날엔 생활이 낮을 중심으로 영위되었었다. ‘일출이작 일입이식日出而作 日入而息’이라고 읊은 옛 시가가 그때는 낮 중심의 세상이었음을 증언해 준다. 해 뜨면 밖에 나가서 일하고 해 지면 집에 들어와 쉬는 생활,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었다.
세상이 점점 낮 중심의 일상에서 밤 중심의 일상으로 옮아가고 있다. 밤만 되면 시내 중심가는 불야성을 이룬다. ‘24시간 영업’이라는 간판을 달고서 새벽까지 불을 밝힌 채 손님을 맞는 장삿집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이처럼 예전엔 낮에 이루어지던 활동들이 지금은 주로 밤에 이루어진다.
낮이 이성의 작용이 승한 시간이라면 밤은 감성의 작용이 승한 시간이다. 그래서 밤은 역시 감성의 지배를 받는 술과 노래와 춤, 이런 것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그리고 춤을 추다 보니 그에 따라 이성을 잃은 추태들이 지난날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그 덕에 파출소는 온갖 크고 작은 일탈 행위의 부산물로 밤마다 홍역을 치른다.
생체리듬도 후천적으로 조절되는 것인가, 올빼미형 인간들이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수요가 있으면 자연 공급이 따르는 법, 그러다 보니 그들을 위한 놀이시설들이 넘쳐나면서 나날이 밤풍경이 바뀌어 간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자 너도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그 대열에 동참하는 인구가 한동안 크게 불어났던 적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도 한때의 유행인 양 시들해지고 말았다.
앞으로 이렇게 가다가는, 장차 낮의 풍경은 깡그리 없어지고 완전히 밤의 풍경만 남는 것은 아닌지……. 설마 기우이겠지만,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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