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문
오피니언기고
명심보감로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9.18  10:44:2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어떤 발견이든 발견은 늘 우연한 기회에 찾아오는 것인가 보다.
이날도 그랬다. 달성군 화원읍의 명곡지구 아파트 단지에 면한 오솔길로 산책을 나선 걸음이었다. 까치봉 들머리에 발걸음이 닿았을 때 ‘명심보감로明心寶鑑路’라고 적힌 큼지막한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 산길이 대체 조선 시대 서당 학동들의 필독서였던 『명심보감』과 무슨 관련성이 있기에 이런 범상치 않은 이름을 붙여 놓았을까, 빨려들 듯 의아심에 사로잡혔다.
안내문에는 고려 말 충렬왕 때의 문신이었던 추적秋適 선생이 중국 원말 명초 시절의 학자인 법립본范立本이라는 분이 편찬한 『명심보감』 원본을 참고해 증보판으로 펴낸 책이라고 씌어 있었다. 명심보감 곧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 이러한 의미를 지닌 이 훌륭한 수신서를 우리 지방 출신의 옛 어른이 지었다니! 나는 무슨 굉장한 발견이라도 한 듯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생각하며 생각한 만큼 누릴 수 있다고 했던가. 오늘 산책에 나선 이 길이 어찌해 명심보감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까마득히 몰랐으니, 순전히 내 무지의 소치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내친걸음에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한번 가보기로 했다. 가보면 분명히 궁금증이 풀릴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으리라.
산기슭으로 들어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노라니, 군데군데 나무로 만들어 세운 표지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명심보감 구절을 새기고,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로 뜻풀이까지 곁들여 놓았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옮겨 본다.

“黃金滿籝이 不如敎子一經이요 賜子千金이 不如敎子一藝라” -황금이 상자에 가득해도 자식에게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기술 한 가지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

“薄施厚望者는 不報하고 貴而忘賤者는 不久니라” -조금 베풀고 크게 바라는 사람에게는 보답이 없고, 몸이 귀하게 돼 천했던 때를 잊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한다.

“孝於親이면 子亦孝之하나니 身旣不孝면 子何孝焉이리요”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 또한 나에게 효도하나니, 내 자신이 이미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리오.

하나같이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 두고서 새기고 또 되새길 만한 귀한 글귀들이다. 이 표지판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궁굴리며 음미하는 재미가 혼자서 나선 산책길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이나 걸었을까. 마침내 달성군 화원읍 인흥 마을 서북쪽 자락에 있는 인흥서원仁興書院에 이르렀다. 남평 문씨 세거지만 여러 차례 갈 기회가 있었을 뿐, 거기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자리한 인흥서원을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여태껏 『명심보감』이 무슨 내용을 담아 놓은 책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지 어느 때 누가 지었는지는 까마득히 몰랐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 책을 편저한 사람은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제학을 지낸 노당露堂 추적이라는 분이며, 그 어른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서원이 바로 인흥서원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이곳 인흥서원의 주인공인 추적 선생은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인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과 함께 이 땅에 유학을 정착시키고 동방예의지국의 기틀을 다진 선비로 추앙받고 있다. 『명심보감』은 고려 말 조선 초 이후 가정과 서당에서 아동 교육의 기본교재로 널리 쓰인 데다, 수백 년 동안 즐겨 읽혀지면서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보배로운 책인가.
나는 이 훌륭한 고전이 우리 지방 출신의 유학자에 의해 지어졌고, 그래서 『명심보감』과 얽혀 있는 인흥서원이며 명심보감로를 세상에 널리 알려 관신 가진 이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을 느낀다.
지금껏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닫고 돌아오는 길,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기사
1
부산KT 최창진 프로농구선수 ‘지역서도 큰 활약’
2
고령군, 민선 첫 체육회장 선거 ‘정중동’
3
고령군관광협의회 “관광지 활성화로 관광객 유치 앞장 설 것”
4
‘셔틀콕’ 화합은 물론 군 홍보와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
5
어르신 재능발견! ‘우리가 스타-G’
신문사소개윤리강령편집규약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시장4길 6 (우)40137  |  대표전화 : 054)955-9111  |  팩스 : 054)955-9112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경북 다 1008  |  발행인 : 김명숙  |  편집인 : 김명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명숙
Copyright 2011 고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