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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혀오시매···’
최 필 동 수필가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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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9  15: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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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애는 호주서 시민권 받겠다고 10여 년을 체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했다.
호주라는 나라, 이른바 백호주의(白濠主義) 때문에 유색인 특히 동남아인은 이민도 받지 않다가 한때 그걸 폐기한 때도 있었다. 그래서 동남아인들의 이민이 몰려들었는데 범죄, 인구 문제 등 폐해가 심하게 되니 다시 백호주의 정책으로 컴백한 것이다.
혹시나 하고 학생비자로 견뎠지만 귀국조치 되고 말았다. 오늘의 이 젊은  이들이 고난의 세월(?)을 보내는데 내 딸아이도 여기 예외일 수가 없다. 물론 결혼도 못 했지만 취업은 더 어려운 현실이니 이를 어쩌나? 이를 안 한 지인이 귀농으로 성공한 신랑감이 있다고 ‘거간’을 자청한 일도 있긴 있다.
아내와 둘이 살 땐 주고받는 일상의 말들은 그저 밥, 옷, 건강 등이 전부였는데 식구가 하나 늘어나니 얼마간은 그나마도 오랜만에 사람 사는 기분이 날 만큼 셋이 주고받는 말들이 늘어갔다. 겉으로는 ‘화기애애’였다. 나는 은근히 앞일을 걱정하지만 아내는 전혀 딴판이다. 10여 년간 좋아하던 것 함께 먹지 못한 것 먹이고 싶어 걱정하고 배달음식도 잦으니 그게 ‘자식사랑’인가 했다.
그런데 그게 오래 가지 않았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대화의 상대가 나는 아니었다. 대화 중에도 내가 끼면 대화 중단이다. 식탁도 그랬다. 나는 평소 질환이 좀 있어 거기 맞는 약 겸 반찬이 두어 가지가 있는데 그것만 내 앞에 슬쩍 밀어주곤 맘먹고 조리한 특식 반찬은 모녀만의 차지이다. 내겐 알아서 찾아 먹으란 얘기다. 맛이 어떠냐고 딸애에겐 물어도 내겐 그것도 없다. 간혹 외식을 갈 땐 저들끼리 속닥거린다. 나는 완전 ‘객꾼’이다.
평소 야구 홈런이나 겨우 알던 아내, 딸애가 야구 중계를 보면 룰, 승패의 전망 등을 묻고 가르치고 장단을 맞춘다. 평생 살아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자니 나는 자연 ‘왕따’가 돼 서운함이 따른다.
또 아내는 신문 낱말 퍼즐 문제에 심취해 있어 그 신문도 별도 구독하고 있다. 한 번은 비워둔 한 칸을 두고 내가 고사를 들먹이며 설명을 했더니 나도 안다며 시큰둥히 한 일도 있다. 그 후론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딸애와는 쉽게 교감을 한다.
누구나 자존심은 있지만 아내는 유독 가벼운 문자나 사자성어에 관해서는 과민할 정도의 반응을 표출한다. 진작부터 그런 성향이 좀 있긴 했지만 딸애가 온 이후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굳이, 들기도 격에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지만 불치하문(不恥下問·모르는 것 묻는 데는 위아래가 없다)이라는데, 왜 거기 자존심을 갖다 대는지 모르겠다. 내가 몇 번 아는 척을 하다가 무안을 느낄 만큼의 반응을 본 일도 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도 일정 수준 자존심이나 갖출 예의는 기본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내에게 묻기도 한다. 모르는 것 묻는데 무슨 자존심인가.
100여 년 만에 처음 오는 폭염이라는데 에어콘의 리모컨은 아내 차지다. 틀 때는 딸애에게 묻고 끌 때는 예고도 없다. 전기 아끼자는 데에는 이 자린고비도 항상 찬성 일변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꺼진 줄도 모르고 자다 보니 땀이 줄줄이었다. 그래서 좀 더 두라는 투정(겁도 없이?)을 했더니 다음부터는 끌 때마다 그 여부를 묻기는 하고 있다. 끌 것을 전제하고 형식상 묻는데 더 계속하라고 할 뱃심 있는 남편이 어디 있을까…?
나의 아내, 기회 있을 때마다 어쩌다 아내 얘길 몇 번 했지만, 남의 흉 거리가 될망정 또 해야겠다. 이른바 솟을대문이 있는 양반이라는 가문에서 나고, 여자는 남편을 따른다[부위부강(夫爲婦綱)]는 교육을 받고 조신하며 생장했음을 처가 사정을 좀 아는 사람 말을 듣고 처음 알았다. 살아보니 실제로도 그랬음을 인정한다. 그랬던 아내인데 어느 날 다시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딴 사람이 돼 있었다.
딸애들 셋 대학 들어갔을 때마다 첫 훈시(?) ‘술 먹지마라, 밤 10시 전  귀가, 어디 가도 여자 덕목 지키라…’ 등이었다. 성인이 됐는데 그런 것까지 간섭한다고 몇 차례 논란을 볼 때마다 나는 애들 편이었다. 우리 집은 엄부자모(嚴父慈母)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그렇게 엄격했던 엄마인데 지금 딸애한테 하는 걸 보면 언제 저렇게 변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외국 ‘시민권’도 실패한 마당에 결혼·취업도 어려운 딸애에게 이른바 ‘헬조선’이라는 굴레를 씌우게 되니 그게 그렇게 애연하게 다가오는지 온갖 정성을 쏟아주지만, 내겐 그저 ‘딸린 식구’ 정도로만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 나이 같잖게 투정도 못 부리니 내 포용력 부족이고 옹졸함이라고 자인하며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면 간단히 정리는 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 본심은 그게 아니다. 가정의 평안을 위해 ‘자기기만’임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헛헛한 마음 옛시조 한 수로 달랠까 한다.
 
                    님이 혀오시매    
 《님이 혀오시매 나는 전혀 밋덧더니/ 날 사랑하든 정을 뉘 손대 옴기신고/     처음에 뮈시든 거시면 이대도록 셜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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