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문
오피니언기고
칠팔월에 내린 눈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7.10  13:37:5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한 장의 빛바랜 사진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저 멀리 낙동강 줄기 사문진나루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화원동산을 배경으로 찍은 영상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깊은 잠에 취해 있는 한 척의 거룻배, 그 앞으로 금빛 백사장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저녁놀에 물든 아내의 입 언저리로 살포시 웃음기가 묻어난다.
단풍이 계절을 채색해 가던 구월의 어느 날이었다. 대구 시내 한 음식점에서 약혼식을 치르고 낙동강변의 화원유원지로 나들이를 갔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이 나비 떼가 돼 연분홍 가슴에 날아들었다. 계절로는 완연한 가을이었어도 마음은 온통 봄이었다.
그로부터 한 해가 지나서 우리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때 아내의 나이 이십대 후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한창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젊음, 그 하나로 눈부셨다. 인생의 꽃이던 시절이었다.
갓 신혼살림을 차렸을 무렵, 아내는 완벽주의자였다. 매사에 스스로 한 치의 어그러짐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철저하고도 치밀했다. 컴퓨터같이 정확하게 집안의 대소사를 꿰고 있는가 하면, 일단 한 번 머릿속에 입력된 사연은 영화 필름처럼 또렷하게 재생해 내었다. 그런가 하면 나물무침 같은 찬을 만들면서는 단 한 차례도 티끌이나 머리카락 같은 이물질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떤 일에는 지나치게 동작이 굼떠서 외려 숨통이 막힌다 싶을 때도 있었다. 아내의 생활사전에 ‘대충대충’이라는 낱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세월이 사람을 무디어지게 만드는가 보다. 그렇게나 세심하면서도 명민하던 아내였건만, 요즘 들어선 아랫도리에 걸치는 몸빼바지처럼 헐렁해져 버렸다. 이따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을 저지르는가 하면 더러는 마음에 없는 소리로 옆지기인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저께 일만 해도 그렇다. 그 일을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에 멍울이 진다. 그러면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번쩍 정신이 든다.
시원스럽게 작달비 한 줄기 쓸고 지나간 그날 오후였다. 육촌 형님 댁에서 함께 저녁 시간이나 갖자며 초대를 해 왔다. 달포 전, 한국동란 직후에 지어진 해묵은 시골집을 허물고 반듯한 양옥으로 개축을 했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새 보금자리의 집들이를 갖는다는 전갈이었다. 아버지가 외아들인 탓에 사촌이 없다 보니 평소 사촌 맞잡이로 가깝게 지내고 있는 터수이다. 반세기에 걸친 세월 동안 겨우 무릎을 허용할 만큼의 옹색한 오두막에서 거처하다 깔밋하고 널찍한 공간으로 삶터를 옮겨 앉았으니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몸단장을 서둘면서도 마음은 앞질러 진정 어린 축하의 메시지를 띄운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 방문해 맛나게 저녁을 먹고는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로 정담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창밖에는 중천에 걸린 달이 휘영청 밝았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귀갓길을 재촉했다. 내가 현관에서 구두끈을 매는 사이 아내는 앞장서서 마당으로 나선다. 바로 그 찰나였다.
“하이고야, 눈이 하아얗게 왔네!”
느닷없이, 자지러지듯 강렬한 옥타브로 터뜨리는 아내의 감탄사가 현관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달려들었다. 그 소리에 놀라 용수철 튀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 봐요, 어디. 이 칠팔월에 웬 눈이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만 헛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염소 뿔도 물러 빠진다고 하는 삼복염천에 눈은 무슨 눈. 며칠 전 콘크리트로 산뜻하게 포장을 끝낸 마당 가득 휘황한 보름 달빛이 대낮처럼 흐붓이 쏟아지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세월 앞에 무너져 가는 아내를 보았다. 그것은 그 무소불위의 힘에 불가항력인 한 나약한 존재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원융한 보름달 속에 둥두렷이 떠올라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선연히 그려졌다.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논밭갈이 하는 농기계인 경운기를 두고서 언제나 ‘직공기’라고 부르셨다. 경운기라는 말이 뭐 그리 어렵다고 당신께서는 바르게 부르지 못하실까. 우리는 그런 할아버지가 참 답답해 보였었다. 아무리 직공기가 아니고 경운기라고 누누이 말씀을 드려도 종내 고쳐지지가 않았다. 결국 끝까지 경운기를 경운기라고 부르지 못한 채 할아버지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시고 말았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평생토록 플라스틱을 ‘플라티시’로 발음했다. 젊은 사람들이 볼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머니는 끝내 바르게 표현하지 못했다. 플라스틱이 뭐 그처럼 까다로운 단어라고 옳게 발음할 줄을 모를까. 나는 그런 어머니가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라며 타박을 해댄 못난 아들이었다.
“아서라. 플라스틱이면 어떻고 플라티시면 또 어떠냐. 그냥 알아먹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지.”
나름의 논리로 어머니는 부득부득 고집을 세웠다. 아니, 꼭 고집이 아니라 그건 어쩌면 세상의 도도한 흐름에 온몸으로 맞서 보려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그런 우격다짐이 나는 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승의 삶을 거두고 영원한 안식에 드시는 날까지 당신에게서 그 틀린 발음이 나올 적마다 나는 옳게 고쳐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조금치의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종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것이 무에 그리 대수라고 끝까지 바르게 돌려세우려고 안달복달하였던가. 이제 한 해 두 해 나이테가 감겨 가면서 어머니의 당시 심정을 십분 헤아리고도 남는다. 그러면서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소홀했음을 가슴 깊이 뉘우친다.
세월의 수레는 구르고 굴러 어느덧 나는 그때의 할아버지, 어머니가 되었고 아이들은 그때의 내가 됐다. 생래적으로 못 말리는 기계치이다 보니 새로운 전자기기만 나오면 미리부터 주눅이 든다.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이런저런 편의장치는 한낱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수십 기가의 메모리 용량이 내게는 거의 무용지물일 뿐이다. 아이들의 능수능란하게 컴퓨터 조작하는 솜씨며 휴대전화 문자 보내는 속도에 마음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곤 한다.
  달팽이관의 기능이 떨어져서일까, 아이들이 속사포로 쏘아대는 발음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다. 마치 탈곡기 돌아가듯 왈왈거리는 소리에 두 번 세 번 묻고 또 되묻기를 거듭하는 수가 항다반사이다. 아이들은 나의 후렴이 귀찮은지 언제나 건성 건성으로 대답을 흘려버린다. 그럴 때마다 한편으론 야속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의 용렬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싶은 자각이 온다.
  노래만 해도 그렇다. 랩뮤직이니 힙합음악 같은 최신가요를 입으로, 몸짓으로 따라 부르는 건 애당초 포기한 지 오래다. 똑똑 떨어지는 그 스타카토의 리듬은 아무래도 불편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두레상 가운데 놓고 젓가락 장단으로 흥에 취하던 박자 느린 흘러간 노래가 좋다.
아이들의 재기 발랄함을 도저히 따라잡을 재간이 없다. 영화 장면처럼 휙휙 바뀌는 세상사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려니 늘 숨이 가쁘다. 이럴 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한 세상 사람들의 말에 절절히 공감하게 된다. 그 도도한 흐름을 어느 누구인들 거역할 수 있을 것인가, 그저 대자연의 엄숙한 질서로 알고 고개 숙이는 수밖에는…….
예전 같았으면 아내는 예의 그 장면에서 칠팔월에 눈이 내렸다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할 위인이 절대 아니다. 그리 똑소리나도록 여무졌던 사람이 그런 생뚱맞은 상황을 연출하는 걸 보면 아내도 이제 늙어 간다는 확연한 증거이리라. 세파에 풍화돼 느슨해져 버린 아내의 모습이, 평소 살가운 말 한마디에 인색했던 내게 자책의 화살을 쏘아댄다.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한다. 저쪽 멀리에 눈부셨던 우리의 젊은 시절이 무지갯빛으로 어른거린다. 잠시 울적하던 마음이 이내 흥그러워 온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칠팔월에도 눈이 내릴 수 있다. 그것은 가슴에 내리는 눈이다.

<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기사
1
(사)한국청년회의소 2020년 심재섭 감사 당선
2
‘사랑의 한가위’
3
‘제46회 군민체육대회’
4
명심보감로
5
고령초 고령 유도를 빛내다!
신문사소개윤리강령편집규약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시장4길 6 (우)40137  |  대표전화 : 054)955-9111  |  팩스 : 054)955-9112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경북 다 1008  |  발행인 : 김명숙  |  편집인 : 김명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명숙
Copyright 2011 고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