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씨의 수는 모두 합쳐서 몇 가지나 될까.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이따금 희귀한 성姓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될 때면 이런 의문이 생기곤 한다.
통계자료를 확인해 보니, 적게는 300여 가지에서부터 많게는 5천여 가지에 이르기까지 그 차이가 무려 수십 배에 이른다. 그렇다면 결국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없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성씨의 숫자에 대해 딱 부러지는 답을 낼 수 없는 까닭은 성만 갖고 따진 것이냐, 아니면 거기다 본까지 쳐서 산출한 것이냐에 가장 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른바 ‘사성賜姓’이라고 해 끊임없이 새로운 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일 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까마득한 옛적엔 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땅에 성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중세 시대인 신라 때부터라고 전한다. 그 당시 존재했던 성으로는 급양부, 사량부, 점량부, 본피부, 한지부, 습비부 등 여섯 부로 나뉜 지역에 각각 이李 씨, 최崔 씨, 손孫 씨, 정鄭 씨, 배裵 씨, 설薛 씨, 이 여섯 가지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양반, 귀족 같은 특권층만 성을 가졌었다. 성이 있고 없음의 여부가 곧 신분을 가름하는 기준이 됐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특권층을 꿈꾸며 너도나도 성을 만들어 쓰거나 아니면 내려 받았고,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숱한 성씨가 생겨난 것일 게다. 이를테면 성이 신분 세탁의 수단으로 이용된 셈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볼 때, 조금 극단적인 표현으로 “모든 성은 하나같이 사성이다”라고 한대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그렇게 하나 둘 만들어지다 보니 급기야 별의별 성씨가 다 생겨났다.
워낙에 희귀한 성이 많다 보니 개介 씨니 내柰 씨니 돈敦 씨니 빙氷 씨니 십 씨 같은 경우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심지어는 발음을 하기조차 어려운 뢰 씨, 궉 씨 이런 성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이는 아마도 세계화, 국제화의 영향으로 온 세상이 지구촌으로 바뀌다 보니 외국에서 귀화한 사람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들이 각기 성을 갖게 되면서 빚어진 현상이 아닌가 한다.
한편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본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통계자료에 의하면 경주를 관향으로 쓰는 씨족들이다. 대략적으로만 살펴보아도 경주 김씨, 경주 이씨, 경주 최씨, 경주 정鄭씨, 경주 손씨, 경주 배씨, 경주 임林씨, 경주 전全씨, 경주 설씨 등 거의 열 가지에 이른다. 이는 경주가 신라의 도읍지로 천 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 이면에는 누구 없이 양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어서 이런 상황이 나타난 것일 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는 예부터 뿌리를 중시해 온 민족이다. 뿌리가 같으면 동질감을 가지게 되고 뿌리가 다르면 배타적으로 대한다. 그래서 같은 뿌리끼리 서로서로 뭉치려 든다. 이 뿌리중시사상의 대표적인 상징성으로 생겨난 것이 족보 아닐까.
성과 본은 같아도 뿌리가 전혀 다른 씨족들이 있는가 하면, 성과 본이 다른데도 뿌리는 같은 씨족들도 있다. 이를테면 같은 김해 김씨이지만 신라 상대 김알지의 후손인 김해 김씨와, 일본 장수로서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조선으로 귀화한 사야가沙也加 김충선 장군의 후손인 김해 김씨는 둘 다 김해를 본관으로 쓰지만 그 뿌리는 전혀 다르다.
그런가 하면 성과 본은 달라도 뿌리는 같은 씨족들도 있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사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두 씨족은 각각 김수로왕과 그의 부인인 허왕옥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비록 동성동본은 아니지만 지금도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다.
성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고향인 고령高靈에 생각이 미친다. 고령은 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본관을 ‘고령’으로 두고 있는 성씨가 고령 김씨, 고령 신申씨, 고령 박씨, 고령 이씨 등 네 가지나 된다.
군 단위에서 이만큼 많은 본관을 갖고 있는 지방도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고령이 크기 면에서는 비록 손바닥만 한 고장이지만,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대가야의 수도로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유서 깊은 곳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러한 의미를 헤아려 보노라니 고향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으로 기분이 흔흔해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