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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태권도 태동 50년(4)고령군 태권도를 이끈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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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4  10: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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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고령에 정착하면서 서서히 붐을 조성한 것이 아마도 지금부터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령사회에서 태권도 보급의 그 중심에 고령군체육회 송원복 고문(태권도6단)을 빼놓을 수 없다.
송 고문은 1966년 3월에 고령군체육회에 가입했고, 태권도 고령도장을 개관해 사범으로 출발했다.
당시는 체육관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태권도장이라는 용어로 불리면서 일반인들의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태권도는 무도가 아닌 싸움꾼으로 연상한 것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해 본다. 당시는 수련비 월 300원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월 10만원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은 부모들의 인식이 스포츠로 대접하면서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1996년에 월 수련비 1만5천 원 할 때 체육관을 넘겼으니 30년을 한 우물을 파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당시는 선수 육성이 아닌 순수한 무도정신과 체력단련의 성격이 짙었다.
그래서 30년 동안 태권도 고령본관을 통해 배출한 제자들이 수 없이 많지만 고령군이나 경상북도를 대표하는 선수는 별로 없었다.
‘고령본관’은 후에 3대 관장으로 이어지면서도 체육관 명칭만은 초창기 그대로다. 거기엔 송 고문의 뜻이 반영되었다.
2대 최재윤 관장은 고령군을 대표할 선수들을 많이 길러내어 도민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송 고문은 훗날 체육관을 제자들에게 넘기고, 고령군체육회 사무국장과 실무부회장을 맡아 군민체육대회 개최와 도민체육대회에 많은 선수들을 훈련시켜 메달을 따는데도 공헌했다.
이런 점들이 고령군 체육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을 것이고, 혹자는 고령군체육사에서 송원복 고문을 빼고는 얘기가 안 된다는 얘길 듣기도 한다.
몇 년 전 문화체육부문에 ‘고령군민상’을 수상했다.
그것이 송원복 고문이 고령군체육계에 미친 영향과 족적임을 반증한다. 평생을 체육인으로 살아왔지만 몇 년 전 건강이 악화되어 고생을 좀 했다.
그러나 본인 자력의 의지로 극복하면서 많이 회복하고 있다.
 운동으로 단련된 정신력과 체력이 아니었던들 생각보다 빠른 쾌유를 기대했을까 싶을 정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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