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세 해 전 초가을이었지, 사랑아 네가 우리 집에 온 때가. 그날은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님이 우리글을 창제하신 날이었단다. 사람들은 ‘한글날’이라고 부르면서 그 위대한 업적을 기려 기념해 오지.
이 뜻깊은 날, 너와 처음 상면했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단다.
가장 먼저 마음을 빼앗은 것은 눈부시게 새하얀 털빛이었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로 백옥 같다는 말이 정말이지 너를 두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
거기다 흑진주를 닮은 까만 눈과 꽃봉오리처럼 오므린 입이 꼭 깨물어 주고 싶도록 앙증맞았었지. 그런 너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더구나. 그래서 이름을 ‘사랑이’라고 지었단다. 네가 이렇게 예쁜 순우리말 이름을 얻게 된 데는 그것 말고도 또 다른 까닭이 있지. 그건 한글날이라는 기념일에 맺은 귀한 인연이 톡톡히 한몫을 한 거란다.
사실 처음엔 너를 입양해 온 엄마가 우리 집 딸아이의 이름인 ‘예안이’ 동생이라면서 ‘예순이’로 했으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내었더랬지. 그랬는데 언니가 듣고는 그건 절대 안 된다며 펄펄 뛰는 거야. 굳이 언니 심기를 건드려 가면서까지 예순이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지. 그래, 그렇게 해서 자연스레 사랑이로 낙점이 되었단다. ‘사랑이’, 어때 네가 생각해도 지금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듣자하니 너는 형제자매가 다섯이었다더구나. 그 피붙이들과 영영 헤어지려니 여간 가슴이 쓰리지 않았을 거야. 우리 집에 오던 그때부터 옛집이 그립고 형제자매들이 보고 싶어 몇 날 며칠을 쉴 새 없이 울어댔었지. 그런 너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애처로워서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단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지. 너도 처음엔 고향을 못 잊어 그리도 울어쌓더니, 날이 가고 달이 흐르면서 새 환경에 시나브로 정을 붙이더구나. 그제야 나도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단다.
지난날 어린아이들이 배꼽마당에서 편을 갈라 불렀던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라는 놀이동요가 있었지. 그 가사를 본뜬 노랫말을 만들어 마음속으로 한번 가만히 중얼거려 본단다.
“우리 집에 잘 왔어 잘 왔어 잘 왔어∼”
그러고 보니 네가 우리 집에 온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잘된 일인 것 같구나. 만일 그 때 우리 집으로 입양 돼 오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집으로 갔다면 글쎄 뒷일이 어떻게 되었을라나. 약차했다간 너한테 본래 주어진 명대로 살지 못하고 어느 여름철 복날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들어가 억울하게 생을 접을 수밖에 없었을지 누가 알아. 하고많은 데 다 놔두고 하필이면 우리 집으로 선택된 것도 다 너의 타고난 팔자고 운명이겠지.
혹시 어디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니? 세상에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거든. 그 인연을 목숨처럼 아끼기에 비록 호의호식은 못 시켜 줄지언정 스스로 생을 마칠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소중히 지켜 나가려고 해. 그것이,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것은 없는 형편일지라도 우리 집의 오랜 전통이고 가풍이라는 사실만은 알아주었으면 해. 존재자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생명만큼 값진 것이 어디 있으려고 말이야.
너도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렴.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 아름다운 세상 천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목숨 부지할 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너의 한살이는 얼마나 축복 받은 것이겠니. 세상에는 너와 같은 종족 가운데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불행히도 중도에 이승을 하직하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야.
사랑아,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어쩌다 너한테 다소간 소홀한 구석이 있더라도 너무 서운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것은 네가 손이 아니고 가족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었으면 해.
그래야 우리도 물론 그렇지만 너 역시도 마음이 편할 테니 말이야.
이 너르디너른 세상천지에서 다른 많고 많은 곳 다 놔두고 용케도 우리 집으로 선택돼 와 한 가족이 된 귀한 인연 참으로 고마워. 그리고 축하해.
사랑한다, 사랑아!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