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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림(韓國儒林) 파리장서(巴里長書) 사건 고령출신 서명자 현창(顯彰) #3독립운동가 이상의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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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7  1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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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李相義)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백양(伯陽)이다. 고종 17년(1880년)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선생을 찾아 뵙고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추는 속수지례(束脩之禮)를 행하고 제자가 돼 학문을 전수(傳受)받아 유학자로서 명성이 인근 지역에 널리 알려졌다.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國權)을 상실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후 오매(寤寐)에도 조국 광복에 마음과 정성(精誠)을 다하던 중 1919년 전국 유림이 비밀리에 파리평화회의에 자주독립을 청원하는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에 서명했던 유림의거(儒林義擧)에 즈음해 연서자(聯署者) 137명중 78번째, 고령 출신 서명자 중에는 같은 내상동에 살았던 이인광(李寅光)에 이어 3번째로 서명했다.
그 후에 사문(師門)의 지휘하에 서명인(署名人)의 규합(糾合)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왜경에게 체포돼 고령경찰서에서 모진 고문(拷問)과 옥고(獄苦)를 치르다가 석방(釋放)된 후에도 민족정기(民族精氣)의 선양(宣揚)에 앞장섰다.
파리장서(巴里長書) 사건에 서명한 6명 중 5명은 정부에서 고인(故人)의 공훈(功勳)을 기리어 건국포장(建國褒章)을 추서(追敍)받은 반면 공만이 유일하게 미추서(未追敍) 유림(儒林)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연고지를 통해 수소문(搜所聞)해도 후손들의 행방과 주소도 알 수 없어 애석하기 그지 없다.
애국지사(愛國志士) 이상의(李相義) 선생의 빛나는 훈공(勳功)이 일월(日月)처럼 현창(顯彰)될 수 있도록 국가보훈처(國家報勳處) 차원에서 ‘애국지사(愛國志士) 이상의(李相義) 선생의 추모비(追慕碑)’를 연고지(緣故地)에 세우는 정책적인 배려가 아쉽다.

※참고문헌 : 폭도사(暴徒史) 편집자료 고등경찰요사, 유림의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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