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게를 저울로 달면 과연 얼마나 될까? 흔히들 ‘세월 앞에 당할 장사 없다’느니 세월을 폭군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는가하면 가는 세월 잡을 수 없고, 오는 세월 막을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세월의 무게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어제의 홍안 소년이 이마에 인생 계급장을 달고 백발이 돼 등 굽은 노인으로 변모했을 때 그 무게는 저울로는 도저히 달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백세시대에 살고 있다. 아주 몹쓸 병에 걸리지 않는 한 백수까지 살 수 있다는 예기다. 목숨이 떨어질 때까지 건강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십년 전만해도 ‘재수 없으면 백세까지 산 다’고 했다.
몹쓸 병에 걸려 백세까지 산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안락사라도 법이 허용한다면 하는 것이 더 행복할지 모른다. 옛말에 ‘골골 팔십’이란 말도 있다. 곧 죽을 것 같으면서도 팔십까지 장수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조그마한 병이 있는 사람은 약을 먹고 건강에 조심하기에 오래 산다는 것이다. 평소에 건강한 사람은 너무 과신하기 때문에 오히려 단명 한다는 뜻일게 다. 그리고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대개의 여성들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스트레스도 덜 받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여성들은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많이 떨어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이란다. 나이가 들면 여성은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와 남성화되고, 남성들은 여성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돼 소극적이고 여성화 돼 간다는 것이다. 대체로 여성은 눈물이 많아 오래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눈물을 많이 흘려 스트레스를 풀면 속이 시원하기 때문이리라. 옛말에 ‘인생칠십고래희’ 라고 했다. 옛날에는 칠십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뜻이다. 요즘은 의술의 발달과 꾸준한 운동으로 장수하는 사람이 많이 생긴 것이다. 옛날은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성인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세월의 수레바퀴를 육십년 전으로 되돌려 본다.
식량이 부족해 초근목피 시절이 그 때이다. 산이나 들에 나가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벗겨 끼니를 연명하던 때가 있었다. 일명 ‘송기떡’이라 불렀으며, 소나무 껍질을 쌀가루와 쪄서 만든 떡이다. 이른 봄 온갖 산야에 나는 봄나물은 보약이다. 쑥을 뜯어 밀가루에 버물어 먹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빠르게 강산을 일곱 번이나 바꾸어 놓았다.
보릿고개는 또 어떠한가. 양식이 부족해 보리가 누렇게 익기 바쁘게 베어다가 보리밥을 해먹던 그 시절이 아련하다.
밀이 다 익기 전에 베어 짚불에 슬쩍 그을린 ‘밀 사리’ 또한 별미가 아니던가. 입 주위가 새까맣게 돼도 주인 몰래 훔쳐 먹던 밀 사리의 추억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콩서리’ 또한 재미있던 추억의 편린들이다. 콩이 누렇게 익기 전에 뽑아다가 불에 그슬려 먹던 시절이 그립다.
수박서리는 또 어떠한가. 곡식이나 돈을 주고 사먹기는 어려운 학생시절, 육상선수출신 친구가 흰 옷을 입고 바람잡이로 원두막 주위를 어슬렁거리면 주인이 그 흰옷 입은 친구를 쫓는 사이, 우리들은 수박서리를 해서 바짓가랑이에 넣어 둘러메고 강가에서 수박파티를 벌리던 일이며, 너무 많이 따와서 모래밭에 묻어두고 며칠 내내 포식을 하던 그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지금 생각하면 그 행위가 비록 바람직하지 못할지라도 시대와 세월이 가져다준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보아질 때 농촌에서 자란 것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고 어느 수필가는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의 여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볼 때 지금 나는 써드 에이지에 접어들었다. 과연 내가 세월의 무게만큼 값진 삶을 살아왔느냐 하는 것을 반성해 볼 때 아직도 그 무게는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지금 생각으로는 오는 연말에 이제까지 쓴 글을 모아 수필집 한 권 더 내는 것이 목표다. 그 다음은 다행히 희수까지 산다면 77세 때 막내수필집을 생산해 손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내 목표요, 꿈이다. 과연 그 꿈이 이뤄 질 것인지는 물음표이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쓴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나는 오늘도 세월 앞에 그 무게를 달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