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하고 백수가 된 이후 하는 일 없이 바쁘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시 문예대학, 박물관대학, 수필아카데미, 플루트교실, 가요교실 등 천방지축 쏘다닌다. 재직 시 못했던 취미활동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몸이 둘이었으면 싶다.
매주 월요일이면 11시부터 두 시간 가요교실에 다니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담 하나를 두고 주민 센터에서 있다기에 신청했더니 처음엔 남자는 안 받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제까지 남자 회원은 한 명도 받은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달 후 연락이 왔다. 동장님께 허락을 받았다고 괜찮다는 것이다. 생뚱맞게 여자들 틈에 끼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워낙 노래를 좋아해서 집사람과 2년째 같이 다니고 있다. 지금은 나날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그 날 배운 곡을 집에 와서 다운 받아 불러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 간혹, 학생을 상대로 하는 낮 노래방에 가서 시간당 오천 원 주고 그동안 배운 곡을 혼자 복습하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다.
난 학창 시절에도 노래를 참 좋아했다. 고 1 때 마을노래자랑에서 2등을 하여 상품으로 거울을 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상품으로 받은 거울을 내 방에 걸어두고 시간만 나면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었다. 요즘이야 노래연습장이 있어서 좋지만 어릴 때는 그런 시설이 없어 소 먹이러 산에 가면 혼자 온종일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나는 노래방에 가면 아무리 오래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동네 가요교실에서 배운 신곡을 혼자 복습하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 취미도 그 타고난 재능을 얼마나 발휘하는가에 따라 인생을 보람 있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신은 인간에게 공평한 재능을 주었는가 보다. 선천성 난쟁이면서도 두 개의 손가락만 가지고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천재소녀가 있는가 하면, 두 팔이 없어도 붓을 입에 물거나 발가락에 끼워 글씨를 잘 쓰는 사람도 있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특기와 취미를 살려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한 가지 취미는 테니스다.
구력(球曆)은 삼십 년이 넘는다. 내가 테니스를 치게 된 동기는 중견교사 시절 연구주임으로 근무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리자로부터 잔소리를 많이 듣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맞서서 싸우면 나만 손해 보기 때문에 퇴근 후 테니스공에 관리자 이름을 써놓고 벽치기를 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쌓인 스트레스가 일요일 운동장에 나가 종일 공을 치고 하늘을 보며 크게 한바탕 웃으면 말끔히 해소가 되었다. 회원들과 하루 내내 점심, 차, 막걸리내기 등 수차례 게임을 하고 엉금엉금 기어 집에 들어와도 일주일의 스트레스가 풀리고 산뜻한 기분으로 월요일 출근을 했었다.
퇴직을 하고 한 가지 취미가 더 생겼다. 글쓰기이다. 글쓰기에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시 공부는 너무 난해해서 입문하려다 말았고, 소설은 너무 길어서 나같이 게으른 사람들에겐 맞지 않는 것 같다. 느지막이 가까이하게 된 수필이란 친구는 나의 적성에 딱 맞는 것 같아 죽을 때까지 같이 지내고 싶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세 친구는 노래, 테니스, 수필로 굳어졌다. 굳이 성명을 밝히라면, 장 노래, 최 정구, 김 수필이라고 지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