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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노씨(江華魯氏) 득성연원(得姓淵源)
최종동 기자  |  bo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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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1  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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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에서는 고령지역에 입향 100년 이상 된 성씨로서 현재 20가구 이상 세거하면서 자손이 번성한 성씨를 중심으로 심층 취재해 본지에 보도하고 올 하반기에 ‘고령지역 세거성씨편람’을 발간하고자한다. 이번 기획은 숭조(崇祖), 경로효친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고령에 정착하게 된 시대와 배경, 관내 집성촌과 인구수, 입향 이 후 문중 인물 등을 알아보고 군정에 반영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 기획에 동참을 원하시는 문중은 자료를 제출해 주시고, 이번 기회에 종친단합과 홍보, 후손들의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는 기회로 삼기바라는 기획시리즈다. 〈편집자 주〉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및 本貫의 由來)
중국사기(中國史記)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편에 주나라 초대 무왕(武王)은 동생인 주공희단(周公姬旦)을 곡부에 책봉하여 노국노공(魯國魯公)으로 봉하였으나 봉지에 가지 않고 자신의 형인 무왕(武王)을 보좌하였다. 무왕이 일찍 타계하여 나이 13세 된 어린 조카가 제2대 성왕(成王)으로 오르니 어린 성왕을 보좌하지 않을 수 없어 봉지에 가지 못했다. 성왕 원년에 주공희단의 장남 백금(伯禽)을 대신 노나라 제후에 책봉하고 노국노공(魯國魯公)으로 봉하니 노나라 제1대 군주가 되었으며 노씨 성(魯氏姓)의 시원(始源)이 되었다. 중국 주나라 근거지였던 섬서성 부풍에 주공희단(周公姬旦)의 사당과 주공상(周公像)을 건립해 놓았다. 중국 제남시에 있는 산동성박물관에 노나라 1대군주 백금으로부터 34대 노경공 수(魯頃公 讎)까지(기원 전 1043년~998년) 노공세계표(魯公世系表)와 주공희단(周公姬旦)을 노나라 제1대 군주로 한 노나라 제후국 세계표가 보관되어 있다.

▶강화노씨 시원(江華魯氏 始源)과 정통약사(正統略史)
강화노씨 1세 시조(始祖) 노중연(魯仲連)은 기원전 222년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외교에 능통했다. 당시 일체변사 또는 종횡가로 불렸던 유세가(遊說家)의 한 사람이며 세속에 구속되지 않는 풍류명사(風流名士)로 제자백가의 사상을 융합하여 당시 포악무도한 진(秦) 나라의 침략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조(趙) 나라 평원군(平原君)을 비롯하여 진(秦)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있는 여러 제후들에게 뛰어난 지략으로 해결해주었다. 이에 각국 제후들이 도움을 받은 사례로 봉지를 내리거나 천금을 내놓았으나 노중연의 말은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모두 사양했다. 전국시대 각국에서는 노중연(魯仲連) 선생을 세기적 천하사(世紀的 天下士)라 호칭하고 극찬하였다고 중국 사기열전(史記列傳)에서 전한다. 시조 노중연의 손자 3세 노계공(魯啓公)이 우리나라 기자조선 애왕조에 들어와 부교사도(敷敎司徒)가 되어 팔조지교 법금(法禁) 예악(禮樂) 살인(殺人) 투도(偸盜) 금간(禁姦) 시서(詩書) 홍화(弘化)와 정전제법(井田制法)을 바로 세우고 인륜도덕(人倫道德)을 계시(啓施)한 위업의 공덕으로 41대 애왕조(哀王朝) 기원전 195년에 강화군(江華君) 고갑비(甲比)에 봉해지시니 강화노씨의 입관조(入貫祖)이시다. 관조(貫祖)이신 노계공(魯啓公)이 선정(善政)과 대업(大業)을 남기시고 승천(昇天)하시니 조정(朝廷)에서는 우리나라 동방(東邦) 선정(善政)의 유덕(遺德)을 만대에 기리는 애정으로 시호를 동정(東政)이라 추서(追敍)하고 만조백관(滿朝百官)과 만백성(萬百姓)들은 한복 저고리 옷깃에 배색(白色)단을 달게 하였다. 이로써 한복동정이 오늘에 전습(傳襲)되었으니 여기에는 관조 노계공(貫祖 魯啓公)의 성훈(聖訓)이 담겨져 있음을 상징(象徵)한다.

▶고령 입향조 이 후 세계와 약사(世系와 略史)
고령 입향조(入鄕祖) 강화 55세 집의공 승주(執義公 承柱)는 사재감정(司宰監正) 진사공 걸(進士公 杰)의 차자요, 한림공 파조(翰林公 派祖) 이무당 인복(二無堂 仁復)의 손자로 자는 계지(繼之)요 조선 세종조(世宗朝)에 경기도 양평에서 입고령하여 무과 훈련원참군(訓練院參軍)을 지냈으며 집의(執義)에 증직되었다. 배위는 숙인(淑人) 성주이씨 연(連)의 따님으로 선영(先塋)은 고령군 개진면 송촌리 집곡 자좌(子坐)에 봉안되어 있다. 집의공 승주의 후(後)는 4자 1여를 두었는데 장자 장사랑 세민(將仕郞 世敏)의 배위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그 후손들은 진주 산청 김해로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정주(定住)하였다. 차자 장사랑 세창(世昌)의 배위는 일선김씨(一善金氏)로 세창의 장자 희순(希舜)이요 차자 희건(希騫)인바 희순의 장자 균(均)의 후손들은 충남 서산 태안 등지로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어 정주하였고, 희순의 차자 락애공 통정대부 삼(洛厓公 通政大夫 參)의 후손들은 고령 개진 광도리(廣道里)와 성산 사부리(沙鳧里), 달성 유가 음리(陰里)에 정주하였다. 입향조 집의공 승주께서 조선 세종조에 입향한 이래 550여 년 동안 향리에서 집성촌(集成村)을 이루고 살아왔다. 집의공의 3자 세형(世亨)과 4자 세정(世貞)은 무후(無後)하다. 1여 는 병조참판(兵曹參判) 고령인 김장생(高靈人 金莊生)공에게 출가(出家)하시었다. 김장생공은 의병대장(義兵大將) 송암 김면(松菴 金沔)선생의 증조부가 된다. 집의공의 4세손이요 희순(希舜)의 차자 강화 58세 락애공 삼(洛厓公 參)은 호가 락애(洛厓)요 조선 중종조(中宗朝)에 통정대부 중추부사 군자감사직(通政大夫 中樞府使 軍資監司直)에 이르고 배위는 숙부인 순천박씨(淑夫人 順天朴氏) 인손(人孫)의 따님이다. 락애공 삼은 송암공 김면 선생의 척숙(戚叔)으로 송암 선생의 부친 찬성공(贊成公) 상사(喪事)를 함경도에서 당하자 송암 선생과 동행하여 수천리 멀고 험한 길을 걸어서 반구(返柩)해 왔다는 송암선생실기(松菴先生實記)에서 밝히고 있다. 입향조 집의공의 7세손이요 락애공 삼의 증손이요 장사랑 극예(克禮)공의 장자 강화 61세 적은공 지도(笛隱公 至道)는 일휘(一諱) 지희(之熹)요 자는 섭이(燮而)요 호는 적은(笛隱)이다. 배위는 평강채씨(平康蔡氏) 안(安)이다. 적은공 지도는 평소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임진왜란 시 왜적이 침입하여 아버지(장사랑 극예)를 죽이려고 칼로 내리치는 것을 네 번이나 사지(四肢)로 막아 사지가 모두 절단될 때까지 아버지를 보호하니 칼을 든 왜장이 공의 효성에 크게 탐복하여 칼을 접고 “효자(孝子)” 라는 혈서(血書)를 남기고 물러갔다는 것은 손록과 고령지(高靈誌)에서 전하고 있다. 선영은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 대점곡에 봉안되어 있다. 공의 후손인 적산종중(笛山宗中)에서는 적은공 휘 지도(笛隱公 諱 至道)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향리인 적산리에 추원재(追遠齋)를 헌립하였다. 입향조의 손자이신 장사랑 희건공(希騫公)은 세창공의 차자이시며 자는 이도(而道)요 배위는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희건공의 후손은 개진면 광도리, 성산면 사부리, 유가 음리(陰里)에서 정주해 왔는데, 입향조 집의공 승주의 5세손이요 처사공 희건의 손자이며 장사랑 중달(仲達)의 자 이신 강화 63세 도은공 휘 대용(道隱公 諱 大容)은 자가 약부(若夫)요 호가 도은(道隱)이다. 배위는 기계홍씨(杞溪洪氏) 정로(定盧)의 따님이다. 한강 정구 선생(寒岡 鄭逑 先生)과는 도의(道義)로 맺어진 사이로 정한강(鄭寒岡) 선생이 도은공 손을 맞잡고 추대존중하면서 말하기를 “약부(若夫)를 보지 아니하면 스스로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만나보면 그 앞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무릎을 구부리게 된다”라고 하였다.

▶입향조 후손 분포와 약사
집의공 승주께서 조선 세종조에 입고령하신 이래 현재까지 550여 년 동안 공의 후손들은 모두 530여 세대 1,800여명으로 조사되었다. (2013년 11월 2일 강화노씨 대동보 발행 시 조사) 집의공 장자 세민(世敏)의 후손(진주, 산청, 김해 종중) 102세대 364명, 차자 세창(世昌)의 장손 후손(충남 서산, 태안 종중) 140세대 468명, 차자 세창의 후손(고령적산, 광도, 사부리 종중) 287세대 986명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시대의 다변화로 인근 도시로 이주하고 향지 고령(개진 적산, 광도, 성산 사부리) 등지에 상주하는 후손은 40여세대 9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입향조 후손 강화노씨는 오래전부터 이땅에 뿌리를 내렸기에 재실(齋室) 2개소, 개진 적산에 추원재(追遠齋), 개진 광도에 도은재(道隱齋)가 있고, 상계선영(上系先塋)이 향지 처처에 산재해 있어 시향제 때는 타지로 이주한 후손들이 동참하여 시향제와 묘제를 봉사(奉祀)하고 종친간의 친목도 다지면서 종친 단합을 이루고 있다. 한림공 파조와 입향조 집의공에 대한 합사시향제(合祀時享祭)는 매년 음력 3월 3일 개진면 옥산리 선영에서 전국 각지에서 100여명의 후손들이 동참배 하고 있으며, 향지 지역종중 제일(祭日)은 음력 10월 17일에 지역 종중별로 50여명의 후손들이 동참배하고 있다. ▶입향 이 후 문중을 빛낸 인물 73세 철규(喆圭) 강화노씨 대종회 회장역임, 73세 인규(仁圭) 국방부 군수사 서기관, 74세 순규(淳圭) 경영학 박사, 기업경영연구원장, 72세 기근(基根) 고령향교 전교역임, 72세 이수(二洙) 경상북도 서기관 역임, 70세 동택(東澤) 토목기술사, 농어촌진흥공사 설계처장 역임, 72세 의철(義哲) 전자공학박사, 부경대 교수, 70세 상율(相律) 미국켈리포니아대학 물리학박사, 스위스 우주연구소 연구원, 71세 만(滿) 강화노씨한림공파 전국화수회장 역임

/정리 최종동 논설위원
자료제공 高靈鄕校 前 典校 魯基根江華魯氏翰林公派宗會 會長 魯永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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