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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우리나라 교육제도 실상과 허상
최종동  |  bo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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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27  13: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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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동물과 달리 이성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를 말한다. 인간의 감정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교육의 목표이다. 그것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동물과는 다른 모습일 게다.
즉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일을 분별하는데 더 중점을 둬야한다는 것은 열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다.
교육자라면 최소한 내가 가르친 제자가 이다음에 사회구성원으로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과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이 급선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여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을 뜻한다. 즉 백년이 지나면서 그 진가와 나라의 교육적인 전통이 살아 숨 쉬게 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뒤바뀌며 시류에 야합하는 즉흥적이고 편의적인 권의지계(權宜之計)의 반대말이다.

교육열에서는 선진국, 질적.양적으론 팽창했지만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가깝게는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학교에 보내며 나는 못 배웠어도 내 자식만은 그래도 배워야 한다는 일념에 논밭 팔아 빚져가며 배움의 길로 인도했던 것이 우리네 선조, 부모들 세대였다.
지금도 ‘교육열’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학부모들이다.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피아노 학원이며 미술학원, 발레학원, 속셈학원 등 수없이 많은 곳을 남의 자식보다 한 가지라도 더 가르치려는 것은 부모들의 이기적인 욕심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전쟁기를 거쳤고,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양적.질적으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초등학교 취학률의 경우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추진된 ‘의무교육 완성 6개년 계획’으로 인해 획기적으로 증가하여 1970년에는 취학률이 92%에 달했다. 그리고 현재는 초등학교 취학률이 약 98%를 보이고 있다는 통계에서 나타나 있다. 대학의 경우 1970년대까지만 해도 10%에 머물던 진학률이 1985년을 고비로 급격히 증가하여 1995년에는 고졸자의 55.1%가, 2010년에는 약 81.9%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양적 팽창에 주력하다보니 교육의 질은 상대적으로 확보되지 못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기성세대는 책임 회피 말고 각성 있어야

그런데, 요즈음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왕따 문제나 일진 등으로 학원가의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서 기성세대의 걱정거리를 자아내고 있다. 그것은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는다는 엄격한 사제지간의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학생이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폭행을 가하여 사회문제가 되는 살벌한 교육현장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딱히 꼬집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우선 인권을 앞세운 체벌금지도 한 가지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옛날 서당에서 훈장님으로부터 매로 종아리를 맞던 것은 순수한 교육적인 매였고, 올바른 인간 형성을 바라는 사랑의 매로 여겼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동의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학교 현실은 어떤가,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지적해도 선생님께 대들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하는 살벌한 교육현장이다. 뿐만 아니라 툭 하면 학부형이 가세해 선생님을 곤경에 빠트린다. 그것이 자식 사랑은 아닌데 말이다.
이처럼 교육적인 지도에도 사사건건 제동이 걸리다 보니 자연히 가르치는 데도 위축되고 소극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을 선생님에게 책임을 돌리기엔 무리다. 또 교복자율화는, 교복을 입었을 때는 그래도 남의 눈을 의식해 학생의 본분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때로는 학생인지가 구별이 안 되는 불량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옛날 학생들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 어른이 나타나면 얼른 감추는 것이 도리였고 미덕으로 알았다. 지금은 보랍시고 버젓이 피운다. 어쩌다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봉변을 피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못 본 체 하고 지나가는 게 불문율이다.
어른이 있어도 어른 구실을 못하는 대표적인 부끄러운 한 예다.

밥상머리 가정교육이 급선무다

이 모든 것이 가정교육의 부재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가정에서 다른 모든 문제에 앞서 입시가 중심에 놓이게 되다보니 가족 간의 대화 단절, 수험생에 대한 지나친 보호로 청소년들은 이기적이고 편협한 인간형으로 자라고 있다. 또 과중한 사교육 과열 현상으로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식구가 함께 밥 먹는 기회가 많이 줄었다. 옛날에는 밥상머리 교육에서부터 사회에 나가서 살아나갈 인격형성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게다.
사교육 과열은 가계 경제 및 국가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여 있을 뿐만 아니라 공교육 소외, 학교 교육의 본질적 목표 상실, 인성교육 부재 등의 수많은 문제점을 파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문제점 개선도 함께 고민해야겠다.
필자가 지방의 어느 학교 앞을 지나다 본 광경이다. ‘담배 없는 스마일학교 지정’이라는 입간판을 보고 실소를 자아낸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는 학생들이 담배를 많이 피웠으나 지금은 다들 끊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부서에서 낸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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