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국의 시인 겸 극작가 T. S. 엘리엇의 ‘황무지’작품 가운데 처음 시작되는 대목이다.
‘황무지’는 1차 세계대전 후 황폐해진 유럽인들의 정서를 묘사한 작품이지만, 발표될 당시에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26년이나 지난 1948년 엘리엇이 노벨문학상을 받고서야 “황무지”도 함께 재조명됐다.
지난 달 16일 침몰한 세월호사고는 선사와 선원들의 과실 및 무책임이 낳은 인재이자 부실하기 짝이 없는 당국의 선박 안전관리시스템이 빚은 관재로 드러나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 떠도는 ‘우왕좌왕 안행부, 얼렁뚱땅 해수부, 멀뚱멀뚱 해경’이라는 말은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고 있다. 2014년 4월 대한민국은 ‘황무지’의 첫 구절과 흡사하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20여일이 지났건만 통곡은 그칠 줄 모른다. 팽목항에서는 자식을 찾지 못한 부모가 울고, 안산에서는 살아남은 친구와 선생님들, 미안해 하는 국민이 운다.
신록의 5월을 맞았지만 그 비통함이 어찌 옅어질 수 있겠는가. 지금도 전국 분향소에는 아픔을 함께 나누는 발길이 이어졌다. 모두가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온 국민의 슬픔을 ‘안전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다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돌아볼 것이 한둘이 아니다. 작동하지 않는 안전시스템부터 당장 고쳐야 한다.
그간 안전불감의 풍토 속에 독버섯처럼 자란 무사안일을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3000가지가 넘는 재난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낱낱이 점검해야 한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실제 현장에 이르기까지 숭숭 뚫린 구멍을 찾아 모두 메워야 한다.
4월이 지나가고 5월이 되었지만 지역의 분위기도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봄철에 집중적으로 열렸던 기업 야유회 행사와 지방자치단체 축제, 학교 수학여행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관련 업체들이 극심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5월의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날 등을 앞두고 연중 최대 대목을 기대하던 공연·이벤트 업체들은 의뢰받았던 행사가 거의 취소되거나 연기돼 일감이 뚝 떨어진 상황이다.
전국적인 애도와 추모분위기 속에서 지역의 각종 행사도 전면 중단되면서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자제 분위기가 지나쳐 일상적인 소비지출과 통상적인 활동마저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국의 지역축제가 80건 이상 취소됐거나 연기됐고, 5월 초로 예정된 관광주간 행사와 홍보가 중단됐다.
소비자들은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하고, 유흥·오락과 관련된 외출은 물론 체육활동까지 자제하는가 하면, 일상적인 물품과 서비스의 구매마저 급격히 줄이고 있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내수(內需)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사랑하는 부모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딸을 하늘나라로 보낸 모든 유가족과 아직도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 생사가 분명치 않은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기일 것이다.
평생 겪지 못한 참담함을 몸소 맞을 수밖에 없는 모든 가족들이 보다 위로받고, 보다 평안할 수 있도록 모든 국민들이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이제는 국민 모두가 스스로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네 탓’을 하기보다 ‘안전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