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어느 기업체의 광고 카피 한 구절이 눈길을 끈다. 광고라는 것이 그 속성상 크든 작든 어느 정도는 부풀려지기 마련이어서 평소 광고에 씌어진 내용을 그다지 신뢰하지 아니하는 편이다. 하지만, 컴퓨터 조작에 관한 나의 경험으로 비춰봐서는 이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수긍한다. 
나는 정말 못 말리는 기계치機械痴다. 새로 나온 기기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선 두려움부터 앞선다. 컴퓨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들이 그 요술 상자 앞에 앉아서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려대어도 소 닭 쳐다보듯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휙휙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 나의 무력함을 자각하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이다. 요즈음 세상에서 생활필수품이랄 수 있는 휴대전화며 비디오며 전자수첩 같은, 단순 조작 기능을 요하는 것들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판에, 하물며 현대문명의 총아라 일컬어지는 컴퓨터 조작에 미리 겁부터 먹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국 문단의 말석에 어쭙잖게 이름 석 자를 걸어 두고 있는 얼치기 작가이지만, 그래도 창작에 대한 열정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하늘에 해 박힌 날이면 글을 쓰지 아니하는 때가 없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귀한 글귀를 남겼지만, 나는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가슴속에 공허감이 밀려든다.
예전엔 작품을 쓸 때 으레 원고지와 펜이 둘도 없는 벗이 돼 주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상想만 떠오르면 원고지에다 대고 긁적거렸었다. 말하자면 원고지가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고 할까. 
한데, 원고지는 늘 그놈의 퇴고가 문제였다. 일단 큰 줄기를 얽어놓고서 뒤미처 퇴고를 하려 들면, 구석구석 수정한 내용들로 온통 난장판이 돼 버리기 일쑤이다. 심지어 고쳐 쓴 글귀가 어떤 내용이며, 또 덧붙일 구절이 어느 곳에 들어가야 하는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아 난감해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문제로 힘들어할 때마다 아내는 컴퓨터를 권했다. 
세상에 컴퓨터만큼 종요로운 물건이 다시없다는 것이다. 그럴 적마다 나는 애당초 기계와는 인연이 먼 사람이라며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가로막았었다. 어찌 보면 지독히도 고집불통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재재작년 가을이었던가, 아내의 끈질긴 권유로 마지못해 컴퓨터 앞에 앉기는 앉았다. 급히 뒤가 마려워 쩔쩔맬 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처음엔 무엇부터 어떻게 배워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근근이 하나를 익히고 나면 앞서 배웠던 하나를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도무지 하는 흉내라도 낼 자신마저 서질 않았다. 
무슨 일이든 세월이 가야만 하는가.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 한 가지 두 가지 조작 방법을 익혀 나가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일단 한 번 배운 것이면 웬만해선 잊어먹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저히 구제 불능이던 기계치가 드디어 전자기기의 오묘한 맛을 알아가기 시작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다. 한편으론 내가 왜 진즉 이 좋은 걸 배우려고 욕심을 내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의 마음마저 든다. 작품을 써 놓고 퇴고하는 일은 이제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아무리 여러 차례 거듭해서 수정을 하더라도 깔끔하게 처리가 돼 나오니 작품 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전에는 대충 초고를 얽어놓고서 퇴고하는 일이 큰 고통이었는데, 지금은 외려 즐거운 작업이 됐다. 고치면 고칠수록 글이 한결 살가운 표정으로 마음에 착 와서 감기기 때문이다. 
특히 집필 도중 긴히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라도 생겼을 때, 일일이 곰팡내 나는 백과사전을 여기저기 이 잡듯 뒤지는 수고를 겪을 필요도 없다. 인터넷 검색창에만 연결해 들어가면 대개 어렵지 않게 뚝딱 해결이 된다. 시간 절약에다 손의 수고까지 덜 수 있으니 컴퓨터는 참으로 신통방통한 현대판 도깨비방망이인 셈이다. 
게다가 모 방송국에서 부설한 문화강좌의 수필창작 강의를 맡으면서부터는 더더욱 컴퓨터의 고마움을 절감하고 있다. 강의에 필요한 자료는 그것이 무엇이든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청강하는 학생들의 나이가 삼십 대 중반부터 칠십 대 초반까지 천차만별이다 보니, 나이 드신 수강생 가운데 종종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분이 있다. 이럴 때의 불편함이란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회원들과는 인터넷으로 이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작품을 보내오고 수정한 작품을 다시 되돌려 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회원과는 일일이 빠른우편으로 받고 다시 보내고 하자니, 물론 적잖은 금전적 부담도 부담이거니와 그보다는 첫째 아까운 시간이 문제다. 
보내오는 데 며칠, 손보아서 다시 보내는 데 또 며칠, 이렇게 한 번 주고받는 데만 적어도 일주일 가량은 소요가 되니 얼마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가. 실시간으로 이 메일을 보내오고 수정한 글을 다시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인터넷, 참으로 이보다 편리하고 신통한 게 또 무엇이 있을까 싶다. 
무릇 세상의 모든 과학적 발명품들은 사람이 운용하기 나름이다. 과학 자체는 가치중립적인데, 이걸 선용하느냐 악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오로지 우리들 인간의 손에 달렸다. 인터넷으로 인해 불거지는 갖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일 우리의 귀를 수선스럽게 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지만, 그래도 잘만 부려 쓴다면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더없이 값진 문명의 혜택일 수가 있지 않을까. 
인터넷으로 인한 다소의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그 사용 자체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어리석음을 범한대서야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이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내가 여태껏 이용할 줄 몰랐다면…….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이제 내게 있어 컴퓨터 사용은 세끼 밥 챙겨 먹듯 자연스러운 일상사가 됐다.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 부르는 작가와 정교함을 생명으로 하는 기계인 컴퓨터, 이 둘은 언뜻 얼음과 숯의 관계처럼 서로 이질적인 듯이 보이지만 기실 기막히게 궁합이 잘 맞는 상대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컴퓨터를 분신처럼 여기며 나의 글쓰기에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고, 도전하는 삶이야말로 더없이 아름답다. 컴퓨터를 애용하게 되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세상사의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