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喜壽)를 맞으면서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본다.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내가 살아온 과정에는 즐거운 추억꺼리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노후에 한꺼번에 들이닥친 건강 이상 후유증으로 인해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제2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 말했듯이, ‘건강을 잃으면 세상을 다 잃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노후에 와서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2002년 조상 묘지상석을 목도로 운반하면서 허파가 파열하는 중상을 입었다. 이 때 응급수술과정에 발견된 후두암으로 인해 동시에 대수술을 받았다. 두 가지 수술이 모두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특히 ‘후두암’이라는 것은 수술 후에도 그야말로 극한의 투쟁으로 견뎌야 하는 대단히 고통스럽게 2년 여의 병상 생활을 했다. 오랜 기간 말을 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수술 후 퇴원하고 보니 2년여의 병원 생활로 약해진 다리에 우선 힘을 올리기 위해 걷기 운동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해준 집사람(정경연, 71)에게 보답하는 심정으로 빠른 회복이 필요했다. 걷고 또 걷고 열심히 운동으로 소일했다. 그러다 마을 노인들이 게이트볼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직감적으로 ‘바로 저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게이트볼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게 된 것이다.
수술직후 ‘앞으로 3년은 보장한다’는 의사의 얘기가 늘 귓전을 맴돌았지만, 어느덧 재발없이 10년을 훌쩍 넘겼으니 그것이 무엇보다 다행이다. 모두가 게이트볼 운동에 전념한 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호홉기장애 3급’이라는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앞으로 사는 동안 집사람을 비롯한 아이들에게 짐은 되지 않도록 오늘도 열심히 게이트볼장으로 향한다.

▶직접 본 일제 36년, 후손들은 잊지 말아야
나는 1937년 10월 30일 경남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 도방마을 각산 줄기 아래 양지바른 아담한 마을에서 탐진(耽津) 안씨(安氏) 백암(佰菴) 덕자 부자 아버지와 완산 전씨 어머니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천성이 남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는 것을 용납지 않는 청렴결백의 성품이 주변에 잘 알려진 아버지와 법 없이도 사신다는 어머니 품에서 유아기를 보내다 여섯 살에 마을에 있는 간이학교에 입학했다.
당시는 일제 치하여서 일본 선생 밑에서 일본글을 배웠다. 칠십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때의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일본선생에게 ‘와라이 박선생’ 하면서 인사한번 잘못하여 한 시간 동안 벌을 받은 생각이 문뜩 떠오른다. 그 후 ‘센세이 아리가또’ 라고 고쳐 불러서 용서를 받은 일을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음을 짓게 된다.
일제가 지배한 36년 동안 모진 고통을 감내한 민족의 수치를 우리 후손들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해방 60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은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는 둥 씨알 먹히지 않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내가 선생에게 말을 잘못했다며 벌을 받은 그날도 집 앞에서 아버지께서 일본 순사(경찰)와 심하게 다투고 계셨다. 그들이 벌인 전쟁을 돕도록 총알 만들라고 집안에 있는 놋그릇을 비롯한 쇠붙이는 싹쓸어 갖다 바쳐야 했고, 목화는 물론이고 소나무에서 채취한 관솔 등을 공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참한 때였다. 아버지께서 책임량을 채우지 않았다고 순사와 다투는 모습을 어린 나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때 순사가 목화씨를 앗는 기구를 어머니로부터 빼앗아가는 순간, 아버지께서 화가 치밀어 오르셔서 ‘우리물건 내가 처분한다’며 도끼로 찍어 파손했다. 그 때문에 일본 순사와 장시간 몹시 다투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이고, 1950년 6월 25일 괴뢰군남침으로 인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전쟁 통에 폭격으로 왕고모 할머니 가족 세 사람을 한꺼번에 잃는 끔찍한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이 땅에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배운 운전기술이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시에는 먹고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내 나이 열일곱 살에 무작정 가출해 대구를 거쳐 경남 마산에서 운전 기술을 배웠다. 그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마을 정미소를 인수, 기계 다루는 소질을 발휘하며 몇 년간 열심히 일했다.
스물두 살에 결혼 후 그해 군에 입대하여 운전기술병으로 군생활을 했고, 군사혁명 이듬해인 1962년 만기제대 했다.
제대하여 처와 함께 고향에 정착해 억척스럽게도 힘든 농사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살아나갈 방법이 오로지 농사 외에는 없었으니까….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막상 시작은 했지만, 너무 힘들어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2년여 만에 농사보다는 조금 수월할 것 같아서 목수일을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한 궁여지책 몸부림이었다.
목수일을 출발하면서 내 집 짓는 것부터 시작했다. 집을 짓고 미장일까지 마치고 나고 보니 일종의 성취감 같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 용기와 자신감으로  목수에 필요한 도구를 걸머지고 일감을 찾아 고향을 비롯하여 대구 등지를 전전하며 일을 맡아 열심히 일했다. 그 때 하루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나누던 막걸리 한 사발은 꿀맛이었고,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만족’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먹고사는 걱정은 덜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살이 시시각각으로 환경변화로 인해 또 한 번 직업을 바꾸는 계기가 찾아왔다. 1966년 탄생한 코로나 택시가 바로 그것이다. 바라만보아도 예쁘게 생긴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에 매료되어 택시운전(제일택시)으로 직업을 바꿨다. 그 후 두 대의 택시를 구입해 직접 운수업에 뛰어들기도 하여 10여년을 무사고 모범운전자로 일했다.
모범운전 기술을 인정받아 1976년 유일성 박사의 영생의원 개원 멤버로 참여(기능직)하여 앰뷸런스로 고령을 비롯한 합천, 성주 등 이웃 지역을 돌며 응급환자 이송을 담당했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를 이송하면서 환자가 치료 후 완쾌하여 웃으면서 집으로 향할 때는 보람도 느꼈지만, 때로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환자를 볼 때는 유족과 함께 울기도 했다. 나에게는 환자 이송이 직업이기도 했지만, 환자나 가족의 애타는 심정과 함께하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했다고 자부한다. 그러한 기본적인 나의 마음이 참작되었음인지 두 차례에 걸쳐 고령경찰서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아이가 웅변을 잘해서 ‘웅변천재 안순 가족’ 신문에 소개
입사 15년 만에 영생의원을 퇴직을 하고 새로 시작한 사업이 1톤트럭 한 대를 구입해 이동 식품판매를 했다. 우리 부부는 새벽에 물건 구입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냈고, 낮에는 동분서주하며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열심히 팔았다. 스피커 소리를 듣고 몰려드는 주민들을 상대로 양심껏 장사를 했다. 그렇게 하니까 부수적으로 수익도 꽤 짭짤했다.
그러나 떠돌이 장사 보다는 한 곳에 정착하는 직업을 찾던 중에 전자기기 수리점을 차리게 된 것이다. 전자기기 수리에 나는 특별한 기술은 없었지만 당시 S전자에 근무하는 1급기사 박사장이라는 분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운영했다.
1994년 우리 가족의 숙원이던 쌍림면 송림2리에 내 집도 마련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1남4녀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처럼은 살지 말고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아이들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썼다. 딸 3형제가 학창시절 하나같이 웅변을 잘해서 웅변으로 받은 상장이 무려 142장이나 됐다. ‘웅변천재 안순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매일신문에 소개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 모두 짝을 만나 각자 제발등에 불을 끄면서 살아가는 것을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고맙고 행복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백씨(치옥)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합천에서 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냈는데, 퇴직 후 청렴의 표상이라며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워준 일도 있다. 거창에 사는 중형(재옥 宰玉, 79)은 신천자문을 붓으로 직접 써 책으로 발간할 정도로 서예의 대가 소리를 듣고 있으며, 성균관 전학을 거쳐 전의 직함을 가지고 사회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 학자다. 

건강 회복을 위해 배운 게이트볼이 이제는 직업처럼 느껴진다. 현재 고령군 게이트볼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전국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 출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지난 3년간 각종 대회에서 고령군 선수단이 거둔 성적은 우승을 비롯해 2위와 3위 등 상위권 입상을 거의 놓친 적이 없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살면서 가족에게는 걱정을 끼치기 않아야 한다는 것이 건강을 한 번 잃어본 경험이 가르쳐 준 교훈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집사람과 함께 게이트볼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면서 자식들 건강하고 그리고 짐은 되지 말아야 하겠으며, 효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최대의 바램이다.
끝으로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 없이 보잘 것 없는 나의 삶이었지만, 이렇게 살아온 얘기를 진솔하게 적어보았으니 과히 허물치 마시고 고령신문 애독자 여러분들께서 읽어봐 주신다면 대단한 영광이 되겠다.
/정리  최종동 기자

2013년  7월
쌍림면 송림리 우거(隅居)에서
운당(運堂) 안순(安珣) 합장(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