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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질빵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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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27  18: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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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면서 독서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요즈음은 책을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싶은데도 금세 눈의 피로가 몰려오기 일쑤다. 이럴 때면 마을을 끼고 나 있는 오솔길로 산책에 나선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하나의 일과가 됐다. 동네 언저리를 한 바퀴 휘∼ 돌면서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초록의 향연에 취하다 보면 흐릿해졌던 눈은 비로소 생기를 되찾는다.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고 했던가. 산책길에서면 그 말에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웬 나무는 이처럼 다양하고 웬 풀은 또 이리도 지천인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없는 나무가 없고 없는 풀이 없다시피 하다. 흔히들 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것이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보다도 많은 것이 풀과 나무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가짓수만큼이나 이름 또한 제각각이다. 사람들 가운데도 오만 이름이 있듯이, 정말이지 푸나무 중에도 별의별 희한한 이름을 가진 것이 한둘이 아니다. 며느리밑씻개니 도둑놈의갈고리니 뚱딴지 따위는 그나마 점잖은 축에 속한다. 개불알꽃이니 젖나무니 자지쓴풀 같은 듣기 민망한 이름을 만나면 마치 벌거벗은 양 내가 외려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 수다한 푸나무들 가운데 한 가지 풀 앞에서 뚝 발걸음이 멈추었다. 사위질빵이다. 무슨 비밀스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에 세상천지 예쁘고 듣기 좋은 이름 다 놔두고 하필이면 이런 별난 이름을 얻었을까. 그 경위에 와락 궁금증이 달려든다. 
사위질빵은 대표적인 여름풀 가운데 하나다. 산천에 밤꽃이 흐드러질 무렵이면, 시골의 고샅길 담 모퉁이나 오리나무 숲 가장자리에 새하얀 꽃송이들이 마치 함박눈이라도 덮어쓴 듯 소담스럽게 피어나 자태를 뽐낸다.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어서일까, 줄기가 실꾸리같이 휘휘 감기며 끝을 모르게 뻗어나가는 열정을 지녔다. 
하나, 덩굴식물이라고는 해도 등이나 칡처럼 워낙에 굵고 질긴 풀은 못 된다. 덩굴식물치고 사위질빵만큼 여려빠진 풀도 없지 싶다. 실핏줄같이 가느다란 게 조금만 힘을 가하면 쉬 끊어져 버리니 도무지 믿음성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생명력 하나만은 대단해서, 무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이 풀이 사위질빵이라는 아주 유별난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설화가 전해 온다. 
예전, 일부 지방에서는 사위가 처갓집 가을걷이를 돕는 풍속이 있었다. 절기상으로 백로, 추분이 지나 추수 때가 되면 사위들은 한동안 처갓집에 머물며 농사일을 거들었다. 부지깽이도 덤빈다고 하는 추수철이었고 보면 여간 생광스러운 손길이 아닐 수 없었을 게다.
이처럼 요긴한 일손이었으면서도, 한편으론 백년손님이라고 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했다는 존재가 또한 사위 아니던가. 하기에 아끼는 씨암탉을 잡아 줄 만큼 극진한 대접이 따르게 마련이었다. 그리 귀하고도 어려운 손님인 사위에게 일을 시키는 장인 장모의 안쓰러웠을 마음이야 말해 무엇 하랴. 그러다 보니 다른 일꾼들보다 지게에 유난히 짐을 적게 얹도록 배려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대우였으리라. 함께 작업을 하는 일꾼들에게서 자연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을 건 묻지 않아도 그림이다. 
“빌어먹을! 약해빠진 이놈의 줄기로 지게 질빵을 만들어 져도 끊어질 턱이 없겠구먼.” 
일꾼들은 부러움 반, 시기심 반으로 이렇게 사위를 골려 대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덩굴식물이 사위질빵이라는 썩 그럴싸한 이름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이따금 후미진 산기슭이나 고즈넉한 오솔길을 거닐다 보면 환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위질빵 풀을 만난다. 반가운 마음에 살그머니 코끝을 가져가 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불현듯 사위질빵의 ‘사위’ 자리에다 ‘할아버지’를 바꿔 넣어 ‘할아버지질빵’으로 부르고 싶은 마음이 충동질을 한다. 지난날 할아버지는 집에서 소꼴 뜯는 당번이셨다. 물론 꼭 연만한 당신께서 소먹이 담당을 해야만 할 만큼 손이 달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언제나 농사일로 바빴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하루 중 얼마씩은 꼴망태 짊어질 짬은 있었고, 우리 형제들 또한 그 정도는 충분히 거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었으니까. 그러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할아버지가 자청하신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들로, 산으로, 냇가로 찾아다니며 소먹이 풀을 뜯어 망태기에 걸머지고 오셨다. 아침나절에 한 짐 그리고 저녁나절에 또 한 짐, 이렇게 하루에 어김없이 두 짐씩을 하셨다. 아직은 초가을이었을 나이에 할머니를 여의고 근 서른 해 가까이 비파 없이 홀로 타는 거문고 신세로 지내며 늘그막의 고독과 벗해 오신 할아버지, 당신에게는 소먹이 풀 뜯는 것이 일상의 유일한 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저물어 가던 생의 허허로움을 달래셨을 것도 같다.
할아버지는 소꼴을 뜯으러 가면 노상 사위질빵 같은 덩굴풀을 망태에 채워 오길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내심 못마땅한 마음을 내비치곤 해도 당신께서는 오불관언,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왜 굳이 남이 싫다는 일을 계속 하실까. 어린 나로서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훗날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당신께서 지셨던 망태기만큼 내 생각주머니가 커졌을 때, 그제야 비로소 그 연유를 깨닫게 됐다. 사위질빵은 덩굴식물이 아닌가. 덩굴식물은 아무리 꽉꽉 다져 넣어도 자연 공간이 뜨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무게는 많이 안 나가는 대신 부피가 크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육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연치에 몸무게보다 더 무거웠을 꼴망태까지 짊어지기에는 힘에 부대끼셨으리라. 
흐르는 세월을 어느 누가 붙들어 맬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당신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 서른 해가 넘었고, 소먹이 풀을 뜯어 오시던 망태기마저 집 안에서 사라진 지 하마 오래다. 그런데도 어쩌다 사위질빵만 만나면 할아버지 생각으로 그리움의 물결이 가슴속에 여울져 오곤 한다. 당신의 외로움의 무게를 덜어 드렸을 사위질빵. 고맙고 사랑스러워 살그머니 보듬어 주고픈 마음이 된다. 그래서 사위질빵을 할아버지질빵으로 고쳐 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위질빵 잎사귀에다 살며시 코를 가져가 본다. 어쩐지 할아버지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것 같다. 그 냄새에 취해 잠시 벌, 나비가 된 듯 기분이 흥감해진다. 우리네 삶은 비록 영속적이지 못해도 그 삶의 자취는 영속적인 것이 아닐까, 사위질빵을 보며 할아버지의 생전을 그리는 나 같은 손자가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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