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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콩나물시루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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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13  1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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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많이 해 본 사람이라야 잘한다. 이른바 노하우라는 것을 그리 만만히 볼 모가 아니다. 
그저 뚝심 하나 믿고 무작정 덤벼들었다가는 십중팔구 실패로 끝이 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콩나물 기르기 같은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일 하나만 해도 그렇다. 얼른 생각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덮어놓고 물만 자주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거기에도 나름의 중요한 비법이 숨어 있다. 그 비법을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 딴엔 잘한다고 한 일이 오히려 저지레가 되고 만 셈이다.
아내가 아침 일찍 나들이를 가는 바람에 시루의 콩나물 물주기가 오늘은 내 몫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은 모양이다. 시간 시간마다 때맞춰 돌봐야 한다며 어린아이에게 이르듯 두 번 세 번 신신당부를 잊지 않는다. 
‘걱정도 팔자시군, 흠흠. 그것 하나 제대로 못 해낼 내가 아니지.’ 
이렇게 내심 자신만만해 하며 호기를 부렸다.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솔직히 한번 멋지게 길러내 아내로부터 점수를 따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평소 이런저런 가정사로 줄곧 핀잔만 들어온 터수이니, 그동안 잃은 점수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 아닌가. 
콩나물이 자라는 데는 무엇보다 신선한 생장수가 좋을 것 같았다. 씨앗을 심어 놓고 어서 빨리 크라며 움터 나오는 싹의 목을 쏙쏙 뽑아 올렸다는 중국 송나라 어느 어리석은 농부의 심정으로, 급수전에서 금방 자아올린 깨끗한 수돗물을 부지런히 시루에다 끼얹었다. 그러기를 한나절 그리고 또 한나절, 알뜰히 시간을 재어 가며 돌보느라 딴에는 적잖이 정성을 쏟았다. 
그랬는데, 아! 글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말갛던 물이, 주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누렇게 변색이 돼 갔다. 그러더니 나중엔 마치 신장염 환자의 오줌처럼 뿌글뿌글 거품까지 이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물을 줄 때와는 사뭇 낌새가 다른 걸 보면,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내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고 계속 의아심을 가지면서도, 웬 되지도 않을 황소고집인지 내 물주기는 미욱스럽게 이어졌다. 
결국 문제가 심각해졌음이 밝혀진 것은 아내가 돌아오고 난 다음이었다. 시루를 덮고 있던 검은 옥양목 천이 벗겨지는 순간, 아내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진다. 시루 가득 갓 싹틔움을 끝낸 콩나물들이 올챙이처럼 까맣게 죽어 있질 않은가. 그때서야 완전히 상황이 뒤틀려 버렸음을 깨닫고 뒤늦게 뉘우쳐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어쩌랴. 콩나물 기르는 데는 수돗물을 곧바로 받아서 쓰면 아니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던 내 무지가 빚은 참사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불현듯 레이첼 카슨의 소설 『침묵의 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모든 생명 활동이 멈추어져 버린 아득한 절망의 세계, 콩나물시루 속은 그야말로 ‘완전한 침묵’의 현장이었다. 얼마나 물이 독했으면 뾰족뾰족 움터 나오던 싹이 죄 문드러져 버렸을까. 평소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는 날이 날마다 이 무색투명한 독성물질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던 셈이 아니냐. 
의학 용어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다. 전쟁이나 테러, 교통사고, 성폭력 등과 같은 충격적인 일을 한 번 겪고 나면, 그 정신적 압박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불안 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학습효과란 그만큼 무서운 것인가 보다. 수십 년 전, 며칠간 낙동강을 죽음의 물로 만들었던 페놀 오염 사고는 수돗물에 대한 우리의 불신지수를 극대치로 높여 놓았었다. 
이제 기억의 스크린에서 완전히 지워지고 말았는가 싶다가도, 이번 일처럼 무슨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 불쑥불쑥 되살아난다. 굳이 페놀같이 치명적인 성분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고도 정수 처리를 위해 섞어 탄 수다한 약품들이 생명을 해치는 독소가 될 수 있음은 넉넉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일이다. 
어찌 수돗물 하나에 한하겠는가. 음식물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가지가지의 환경호르몬이며 중금속 제제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 몸속에 켜켜이 쌓여 간다. 콩나물이 그럴진댄 어디 사람인들 온전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콩나물은 말라깽이처럼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데 비해, 우리 몸은 뚱뚱보같이 반응이 무디어서 이제껏 자각을 못 한 채 지내 왔을 뿐이다. 아니면, 설사 자각은 한다손 치더라도 새끼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느끼는 체감도의 차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이 침묵하는 죽음의 그림자들에 우리 몸은 서서히 옥죄여 들어가, 궁극엔 암 같은 몹쓸 병으로 이행되는 비극적 결과로 이어질 것만 같아 어쩐지 불안스럽다. 이런 불길한 상상에 빠져 있으려니 불현듯 뭉크의 ‘절규’가 온몸으로 엄습해 온다.
오늘 저녁엔 헛구역질이 더욱 심해질 것만 같아 양치질하기가 자꾸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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