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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후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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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6  11: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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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이 낡아빠진 듯한 속담이 요새처럼 절실히 와 닿는 때가 없었다. 오늘 새것인 물건이 내일이면 벌써 구닥다리가 돼 버리는 세상이다. 그러니 앞으로 십 년이란 세월 동안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 것인가는 자질구레한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온갖 문명의 이기가 이룩해 놓는 눈 깜짝할 사이의 변화가 내 예민한 정신을 아뜩하게 만든다. 요즈음의 십 년이 예전의 백 년 맞잡이고, 일 년이 십 년 맞잡이다. 아니, 일 년은커녕 한 달도 채 못 가서 휙휙 바뀌어 버리는 시대이고 보니,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세상만사 그 어떤 것이든 필연적으로 양면성이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찬란한 문명이 가져다준 혜택의 이면에는 그와 맞먹는 심각한 부작용이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하루가 다르게 도로를 메워 나가는 자동차들이며, 나날이 샛강의 오염 수치를 높이는 수세식 화장실이며, 숨이 막히도록 다닥다닥 들어서는 수많은 고층 건물들…….
그 어떤 탁월한 과학자 혹은 눈 밝은 예언가도 한껏 가속도가 붙은 현대문명이란 열차가 앞으로 삼십 년 후 어느 지점에까지 당도해 있을 것인가를 딱 부러지게 예측해 내지는 못할 것 같다. 삼십 년 전 당시의 과학자들이 오늘의 상황을 예측했건만 지금 그 예측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결과돼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일은 그보다 열 배, 백 배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아니할 것임이 틀림없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일종의 지체현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인간 자신의 삶의 조건을 헤아리기 힘든 시대, 그런 어지러운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중이다.
지난여름의 어느 휴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 안에 틀어박혀 무료를 달래던 중, 먼지 묵은 책상 서랍 속에서 우연히도 삼십여 년 전 학창 시절의 추억이 담긴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찾아내었다. 잃어버린 세월을 다시 만난 듯한 반가움에 가슴속이 흔흔해 왔다. 아! 그때는 그랬었지. 내남없이 가진 것은 넉넉지 않았어도 풋풋한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던가.
사진 속의 풍경이 지난 시절의 정겨웠던 한때를 물안개처럼 아련히 피워 올린다. 낙동강변 화원 나루터의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백사장, 그때 우리는 그리로 소풍을 갔었다. 아이들이 아래위로 까만 동복 차림을 한 모습으로 보아 어느 깊어가는 가을날이 아니었던가 싶다. 모두들 강기슭에서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어 올리고는 허리를 구부린 채 뭔가에 열중해 있다. 조개를 줍는 것 같기도 하고, 물기 머금은 모래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강을 가로지르며 이름 모를 새 떼들이 한가로이 날고 있었고, 은빛 백사장은 오후 햇살의 잔광殘光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반짝였었다. 두 손으로 움켜 그대로 들이켜도 좋을 만큼 깨끗했던 강물, 그 유리알 같았던 강물을 팔뚝만 한 잉어며 졸망졸망한 피라미 떼가 한가로이 노닐었다. 우리는 물속에다 얼굴을 묻고 눈을 뜬 채로 누가 더 오래오래 견디나 내기를 했었다.
그런 강물이었다. 내 유년의 강은 이처럼 언제까지나 고이 간직하고픈 꿈속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 불과 삼십 년도 못 된 사이에 한 치 아래도 분간하기 힘든 시커먼 먹물 빛 가득한 시궁창으로 바뀌고 말았으니……. 격세지감으로 가슴 한 자락에 시린 바람이 인다.
비단 강물만이 아니다. 하늘 공간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어쩐지 세상이 예전에 비해 많이 어두워진 것 같다 싶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전에 매스컴을 통해 발표된 한 통계 자료는 이를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그 수치에 따르면, 놀랍게도 지구로 쏘여지는 태양 빛의 투과율이 몇십 년 사이에 약 십분지 일 정도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체감지수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할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몇십 년 후에는 얼마나 더 어둑해질지 가늠조차 어려워졌다.
눈이 시리도록 청명했던 지난날의 하늘 공간은 이제 추억 속의 이야기가 돼 버렸다. 우리들 생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 공사장의 비산먼지며 자동차의 매연이며 공장 굴뚝의 연기 같은 온갖 공해 물질들로 인해, 요사인 대체로 맑다는 일기예보가 뜬 날조차도 실내등을 켜 놓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머잖아 꼭 유령의 도시처럼 항시 어스름 달빛 속 같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마음이 드는 것은.
불현듯 앞으로 삼십 년 후에 펼쳐질 상황을 그려보며 뜬금없는 상상에 빠져든다. 우리 사는 세상이 줄곧 지금 같은 속도로 바뀌어 나간다면 그때쯤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까.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망가뜨리고 삶의 공간을 황폐화시켜서는 이 지구라는 별이 온전히 남아 있기나 할까. 내 아둔한 머리로는 감히 그 윤곽조차 그려 볼 재간이 없어, 아예 생각 속에 떠올리는 것마저 두려워진다. 
예전에 비할 수 없이 살기가 좋아진 세상이라고 사람들은 떠들어 대길 좋아한다. 그러한 항간의 이야기들이 정녕 맞긴 맞는 말일까. 누가 내게 만일 이런 질문을 던져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니오’ 편에다 손을 들고 싶다. 물론 살기 좋은 세상의 가치 기준을 어느 쪽에다 둘 것인가에 따라 결론이 극과 극으로 갈리긴 하겠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한 어느 여성작가의 주장에 기댄다면 나의 생각이 보다 바른 답에 가까울 것도 같다. 
물질적인 풍요와 그 반대급부로 얻게 된 우리들 삶의 공간의 황폐화, 이 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막힌 연줄, 요즘 이런 것들의 의미를 헤아려 보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연히 언감생심일 터이긴 하겠지만, 그 시점에 가서 적이 오늘 이즈음의 모습만이라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에 가져보는 나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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