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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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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02  15: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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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기계도 때로는 낯가림을 하는가 보다.
연전에, 새로 마련한 자동차가 자주 말썽을 부려 한동안 정비공장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여러 차례나 발품을 팔았는데도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았다. 나는 정비기사의 등에다 대고 불만의 화살을 꽂았다.
“그만큼 손을 보았으면 완전해졌어야지 어째서 계속 이 모양인가요?” 
굵은 땀방울을 연신 소맷자락으로 훔치며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점검하던 정비기사가 불쑥 이런 말을 던진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어투로.
“선생님, 자동차도 낯가림을 한다는 것 여태 모르셨어요?”
범상치 않은 그 한마디가 벼락이 치듯 뒤통수를 가격해 왔다. 순간, 내 죽어 있던 의식의 심연深淵에 격렬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낯가림이라…….’
아하,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내가 지금껏 녀석에게 정다운 정 한 번 제대로 쏟질 않고 있었구나. 그래서 녀석이 나한테 낯가림을 한 게로구나. 
문득, 몇 해 전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진주로 내려갔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 운전대를 잡은 직장 상사가,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서 손바닥으로 보닛을 토닥이며 독백처럼 중얼거리던 말이 떠올랐다.
“먼 길에 수고했다.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 
귀여운 강아지를 어르듯 말투가 살가웠다. 
나는 불현듯 깊이 잠들어 있던 의식에서 깨어나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았다. 
순간, 민망스런 마음이 돼 취한 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십 수년간을 자동차와 한 몸처럼 가까이 지내고 있건만, 지금에 이르도록 한 번도 그이를 생명체로 대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값이나 따지고, 크기나 따지고, 모양새나 따졌을 뿐이다. 이것이 여태껏 자동차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름의 가치관이었다.
  그 정비기사는 평소 자동차를 대할 때 얼마만큼 깊은 애정을 쏟기에 녀석의 낯가림까지를 꿰뚫고 있는 것일까. 그에게 있어 자동차란 그저 감정 없이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차가운 기계이거나, 꾸벅꾸벅 짐만 실어 나르는 운송 수단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다. 호흡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노래하는 어엿한 생명체였음이 분명하다. 
엔진은 그 애의 심장이며, 갖가지 노즐들은 얽히고설킨 그 애의 핏줄이며, 핸들은 그 애의 마음인 셈이었다. 이를테면, 그의 자동차에 대한 나름의 철학은 단순한 직업 의식적 차원을 초월해 있었다고 봐야 옳겠다.
자동차가 낯가림을 한다는 깨우침, 그건 종교보다 가슴에 와 닫는 설법이었다. 그랬다. 평소 무심한 듯 보이는 기계도 낯가림을 하고 있었던 게다. 이처럼 생명 없는 물건조차 낯가림을 하거늘 무릇 생명 가진 것에 있어서이랴. 그 깨달음은 내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낯가림은 아직 애정의 결핍 상태다. 그 어색한 조우遭遇에 부지런히 생명의 물을 주고 사랑의 거름을 뿌려야 한다. 그래야 정이 붙고 살가워질 것이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갓난아기를 대할 때, 그 어린 생명은 자신에게 전해 오는 애정의 진실성 여부를 본능적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참사랑으로 마주하면 연신 방글거리다가도, 애정 없이 의무감으로 대하면 금세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어른들의 세계라고 해서 그리 다를 게 뭐 있겠는가.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사무적으로 타인을 대한다. 여기서 자연히 마음은 멀어지고 낯설음이 자라난다. 이런 낯설음이 마주 대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힘에 부치게 만든다. 
진실한 마음으로 맺어진 교분交分은 손질 잘된 가구처럼 반들반들 윤기가 나지만, 이해관계로 얽힌 사귐은 이끼 묻은 푸석돌같이 틈이 벌어져 이내 허물어진다. 돈내기로 성의 없이 쌓은 돌담이 작은 비에도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이후로 나는 애정 어린 마음을 쏟아 자동차를 돌보기로 했다.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 대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야 녀석도 낯가림하지 않고 아기처럼 내 앞에서 방글거릴 것이다. 
비단 자동차에 한하겠는가. 사려 깊은 관심과 믿음으로 세상사를 대한다는 그 마음가짐 하나가 무엇보다 소중하리라.
지혜의 눈으로 살피면 처처處處에 가르침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세 사람이 동행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도 했다. 그 정비기사는 비록 학문적인 지식에서야 내게 비교가 아니 될는지 모르지만, 내가 발 벗고 쫓아가도 결코 미치지 못할, 보석처럼 반짝이는 삶의 지혜를 지녔음이 틀림없다.
그는 바로 나에게 가르치지 아니하고 가르침을 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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