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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오류, 준엄해야 한다
최 필 동 수필가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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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06  14: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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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당선인(윤석열)은,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여기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사태를 진압하려다 희생된 군경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이 없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4·3사건’, 간단히 볼 사건이 아닌데도 말이다. 격전의 대선 때 평생 검찰이나 하고 의원도 ‘영선’인데다 정무감각도 없다고 맹공을 당하더니, 국가 중대사가 뭔지도 모르는지 아직도 걱정이 앞섬이 사실이다. 적어도 그런 추념식에 참여하려면 ‘제주4·3’의 본원(本源)이라도 일독(一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엄청난 사건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 있을 텐데 군경 희생자들의 명시적 언급이 없었음을 탓한다는 말이다. 관련된 모두의 포괄적 언급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열 살 전후일 때 있었던 일이라 사건의 대강이라도 당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공식 명칭이 ‘폭동’이라고만 배웠다가 노무현 정부 때에 와서는 ‘화해와 상생’이라는 미사여구로 ‘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가 창설되고, ‘폭동’이 ‘제주4·3사건’으로 바뀌었다. 거기다 ‘제주4·3평화기념관’까지 세웠으니 그땐 좀 어리둥절했다. 사건 본질상 토벌대, 무장대 모두 포용하는 게 ‘국가 정체성’ 아닌가?
4·3사건이 정치권 중심에 섰을 때 진상(眞相) 한 기록을 봤다. 어느 날 군경이 말을 타고 가던 중 어린 학생을 치여 숨지게 한 사건이 터졌으며 군경이 그냥 지나쳤다. 이를 본 제주도민들이 항의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해방 정국을 맞으며 좌우익으로 첨예하게 갈린 상황인 데다, 이를 본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기름을 부었다. 가뜩이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 반대 투쟁을 할 때였으니, 바로 경찰관서(지서) 12곳을 습격하면서 사건은 그렇게 시발돼 제때 선거도 못했다. 
군경 토벌대와 남로당 무장대와의 충돌에서 3만 여 명의 피아간의 희생이 있었다는 기록도 나왔다. 게다가 사건 진상을 밝히는 데는 소홀했고 군경에 의한 죽은 자들만 들춰내어, 반란군 진압을 위한 국가 명령을 수행하다 희생당한 군경들을 역도(逆徒)로 만들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었다. 이야말로 역사의 큰 오류(誤謬)이다. 더구나 군경들을 ‘양민 학살’ 주범이라고 ‘주홍글씨’를 새기고 남로당 암살자는 ‘의인(義人)’으로 미화하니, 이 무슨 천인공노할 행태인가? 당시 소대장이던 채명신 장군은 “양민을 학살한 게 아니라 구출하려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4·3위원회’ 위원을 지낸 한광덕 예비역 소장은, “윤 당선인이 남로당 책임은 묻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해 목숨 바친 군경의 희생에 침묵한 것은 국민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한 상황이다. ‘제주4·3’의 역사는 왜 이리 국민에게 오도(誤導)돼는지 모르겠다.
남한만의 건국 세력이나 그걸 반대하는 남로당이나 모두 한 민족이고 넓게 보아 한 형제인데, 설령 서로 피 흘리고 싸웠더라도 상대가 적대국이 아닌 이상 어느 한쪽만을 단죄할 수 없음이 보편적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왜 한쪽만 면류관 씌우고 또 한쪽은 가시관 씌워 연옥으로 떨어뜨리느냔 말이다. 그것이 ‘제주4·3사건’의 본말인데-. 더욱이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기 위해 북한서 밀파한 제주남로당 총책 ‘김달삼’은 보이지도 않고, 그들을 토벌하려는 군경만 보는 외눈박이였던 것이 더 큰 문제다. 게다가 김달삼은 ‘스타린 대원수 만세’라고도 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토벌대도 남로당도 모두 책임 있는 민족적 비극인 것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기본정리법’, ‘평화와 상생’에만 방점을 찍으면서도 그 이면의 최종 표적은, 당시 정부(이승만)의 공권력에 있음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의 골자이다. 다시 말해 건국을 반대했던 세력(남로당)의 준동(蠢動) 때문에 해방 공간에서의 공권력 행사는 법리적 질서가 잡힌 오늘에 비하면 생래적(生來的)으로 폭압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폭동 수준의 남로당의 무장봉기를 토벌하려면 과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고, 양민과 공비를 구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혼란상을 제대로 보려면 오늘의 법치로만 볼 것이 아니라, 피아 구분도 어려워  ‘양민 학살’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내 판단이다.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엄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 미래가 없다하지 않나? 또 역사는 무오류(無誤謬), 준엄(峻嚴)해야 한다. 그런데 불명예 퇴진한 광복회장 김원웅은, 소련은 해방군이고 미군은 점령군이라 하고, 또 이승만은 친일파이며 남북 분단의 책임자라 독설을 쏟아냈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일갈도 있었다. 사실 한미FTA 협정, 해외 군 파견, 제주해군기지 구축 등은 업적에 들지만 ‘…말았어야 할 나라’는 정말 오류였다. 이 주장에 ‘말 테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런데도 ‘민족 화해’라는 이름으로 과거사를 들춰 ‘제주4·3사건’을 정치 현안으로 부상시키더니 ‘제주4·3사건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형 추모 기념관도 세웠다. 이런 편향된 역사관이 정사(正史)로 자리매김해서는 안 되며 그래서 역사는, 무오류(無誤謬)는 물론 준엄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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