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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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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07  15: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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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까닭 없이 몸과 마음이 쇳덩이같이 무지근해지는 날이 있다. 세상만사가 다 시틋해지고, 사람살이에 대한 회의懷疑가 그림자처럼 찾아들 때가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그 어디인가에 있을 이승에서의 생의 종착역을 생각해 보곤 한다. 그 생각은 언제나 나를 인간 존재의 본원적인 가치문제, 이를테면 삶과 죽음이며 찰나와 영원이며 보다 값진 사람살이의 자세 같은 것들에 대한 상념으로 이끌어, 이런저런 다짐들을 되뇌게 만든다. 
그 다짐들이 종내 덜렁덜렁 빈 두레박이 돼 버리고 말지라도, 어쨌든 그러한 생각의 오솔길을 거닐고 있는 순간만은 마음이 푼푼해 온다.
심사가 흐트러질 때는 이승에 잠시 머물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기로 하자. 덧없이 스러져 간 유명 무명의 안타까운 이름들, 내 오늘 이 순간을 살아 어쭙잖은 글 몇 줄이나마 세상에 남겨 놓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가. 꽃 피는 봄, 녹음 짙은 여름, 단풍 고운 가을, 눈 내리는 겨울의 정취를 아직도 보고 듣고 느끼며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 있음으로 해서 덤으로 누리게 되는 축복이 아니냐. 더 높이, 더 크게, 더 많이 차지하려는 집착으로 가득한 삶일수록 언제나 목마름도 그만큼 깊어지는 법, 눈높이를 한 뼘만큼만 낮추고 살아가야겠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모른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 낮은 곳에 서 봐야 비로소 그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 
채근담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삶에의 욕망이 분에 넘치면 죽음의 허망함을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는 늘 일상의 틀에 갇혀 아옹다옹하면서 죽음을 저쪽 외진 구석에다 세워둔 채 살아간다, 마치 영원한 타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다 어느 날 피를 나눈 부모 형제며 사랑하는 처자며 아끼는 벗 그리고 신실한 동료……, 주위에 있는 가까운 이들의 느닷없는 죽음 앞에서, 내게는 결코 다가오지 아니할 것 같았던 사신死神의 그림자와 마주하고는 그때서야 허둥거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엄숙히 자리하고 있는 무형의 실체. 살아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죽어간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고 당당해지려면 미리부터 항시 죽음 쪽으로 마음의 귀를 열어 두어야 하리라. 
“우리가 철학한다는 것은, 생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설파한 철학자 키케로의 말이 뜨겁게 가슴에 와닿는다.
욕심 같아서는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천년만년을 살고 싶다. 아니, 영원히 죽지 않을 비법이 있다면 그 길에 매달려 보고도 싶다. 하지만 죽음은 어느 순간 빚쟁이처럼 예고 없이 우리 앞에 찾아온다. 어느 작가는 죽음을 일러, “절대자로부터 목숨 얻어 생겨난 존재이면 그 누구든 필시 한 번은 받아야 할 인생의 졸업장”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아무도 이 죽음의 손아귀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는 일이다.
삶은 이쪽 가까이에 있고 죽음은 저쪽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그물은 삶의 도처에 공기처럼 널려 있다. 내 오늘 이 순간까지 그 그물에 걸려들지 아니하고 용케도 살아남은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축복인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존재가 가진 본원적 정서일 터이다. 그 두려움을 우리 손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내 차라리 벗을 삼으리라. 그러기 위해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부터 버려야겠다. 그래야 내일 한 잎의 낙엽처럼 훌훌 떠나게 되더라도 그리 애석하지 않을 것 아닌가. 삶은 그 길이와 양이 문제가 아니라 과정이며 질이 중요한 법.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요체인 것을…….
설사 내세를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누구든 죽음이라는 이 절대의 공포로부터 조금이나마 놓여나려면 오늘 하루를 착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추한 얼룩 남지 아니하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겠다. 내 내세를 필연이라고 믿기에 여기서 더 말해 무엇 할 것인가. 
풀꽃같이 여린 생명일지라도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어야 하리라. 그들도 다 절대자의 섭리 따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목숨 부여받고 이승에 생겨난 존재가 아니냐. 
그리고 또 이렇게 다짐을 놓는다. 강자 앞에서 굽실거리지 말고 약자 앞에서 우쭐대지 말자. 비굴함은 강자로 해금 세상을 어지럽히게 만들고, 교만은 약자의 가슴에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 자국으로 남을 대못을 박는다. 그러기에 우리 삶 가운데 이 비굴함과 교만보다 고질적인 병은 없으리라. 어느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올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고 담담히 떠나갈 수 있을 그런 종말을, 항시 화두話頭처럼 가슴에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이것이 그 언제인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승과 하직해야 할 시점이 찾아왔을 때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맞이할 수 있는 길이리라.
이런저런 부질없는 상념의 연못에서 한참을 그렇게 유영遊泳하다 보면, 잠시 울적하던 마음은 밤물결처럼 가라앉고 이내 마음의 안온함을 얻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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