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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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물살에도 쓸리지 않을 고뇌의 흔적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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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24  1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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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누구는 꿩 구워 먹은 자리처럼 흔적조차 끼치지 아니하고 그렇게 머물다 떠나는 것이 가장 품위 있는 마무리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도통한 사람이나 하는 이야기일 뿐, 우리같이 범속凡俗한 위인들이야 어찌 그럴 수 있으랴. 남이야 알아주건 말건 그저 무엇이든 남기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런 심사 아닌가. 어떤 이는 남의 부러움을 살 만한 큰 재물을 남기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길이 꺾이지 아니할 절대의 권력을 남기고 싶어 하며, 또 어떤 이는 세상이 우러를 화려한 명성을 남기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여차 그리 남겨서는 또 뭣 할 것이냐고 되묻는다면 그 대답이 궁해질 터이지만, 어쨌든 남기고 보자는 속셈이 필부필부의 소박한 욕망임에랴.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듯이, 덧없고 허망하기로는 아마 이들 만한 것도 없을 듯싶다. 십 원짜리 동전 한 푼 가지고 떠날 수 없는 것이 재물이며, 시절인연 따라 멀어져 가는 것이 권세며 명예인 것을. 
우리는 내남없이 천년만년 살 줄로만 알고 끝 간 데 없는 집착에서 놓여나지 못해 허우적거린다. 내일 어찌 되는 줄을 모르고 오늘을 분별없이 살아가는 미혹한 존재들. 그러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도 끝내 이런저런 부질없는 욕망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세월만 축내는지도 모른다. 
한평생 재물 긁어모으는 데만 아등바등하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찾아든 죽음과 맞닥뜨린 한 재벌 회장 부인의 이야기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이 목숨처럼 아끼던 재물들을 차마 놓지 못해 손안에 움켜쥔 시늉을 하고는 “안 돼! 안 돼!” 연신 외마디소리를 부르짖으며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죽어갔다고 했다. 일전에 어느 호스피스가 들려준 고백의 말이다.
재물이란 얼마나 흩어져 버리기 쉬운 존재인가.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당장은 편하고 호사스럽고 안락하긴 할지 모르지만, 그 끝은 한 번의 파도에도 힘없이 쓸려 허물어져 버리는 모래성 같은 것, 이것이 재물의 속성이다. 
이처럼 허망한 모래성을 쌓을 것이냐, 아니면 거센 세월의 물살에도 끄떡없을 고뇌의 탑을 쌓을 것이냐. 이 선택의 문제로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은 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되묻기를 거듭한다. 
  이 속 모르는 다툼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듭되는 붓 자국의 망설임 끝에 결국은 후자 쪽에다 굵고 진한 동그라미가 쳐지는 것이다. 이리해 내 마음의 수첩에는 무수한 동그라미 표시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보태어져 나가고 있다. 
세속적 가치로 따진 모든 귀중한 것들은 덧없음의 이법 앞에 속수무책일 터이지만, 혼을 쏟아 가꾼 무형의 자산은 그 영원성을 보장받는 보증수표가 될 것이라고 굳게굳게 믿는다. 산고産苦의 아픔, 아린 정신작용의 소산인 글이야말로 분명 그 귀한 몇 장의 수표들 가운데 한 장이 아닐까.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기에, 나는 하고많은 개체들 가운데 ‘나’라고 하는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잠시 왔다 갔다는 증표로 그저 몇몇 사람만이라도 공감해 줄 글 한두 편을 남기고 싶다. 여태껏 쓰잘데기없는 자질구레한 욕망 때문에 헛되이 흘려버린 시간들이 도대체 얼마였던가. 돌이켜 보면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또 회한이 남는다. 
이제 목표는 뚜렷이 정해졌다. 더 이상 부끄러움의 얼룩이 번지지 아니하도록, 앞으로 남은 내 생애는 부지런히 고뇌하고 쓰는 일에 바쳐질 것이다. 
어쩌면 온전히 그 가운데에 서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 인간의 생애에 대한 평가는 그가 죽고 난 다음 관의 뚜껑에 못질을 할 때 내려진다고 했다. 이럴 경우 태반을 글쓰기에 바쳐진 나의 한살이도 그리 허망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은연중에 기대해 보는 것이다. 
회심곡回心曲은 말씀해 놓았다, 사흘 동안 닦은 공덕 천 년의 보배 되고 백 년 동안 탐한 재물 하루아침에 티끌이라고. 고단한 사람살이에서 얼마나 큰 위안이 돼 주는 값진 한마디인가. 
나는 이 ‘사흘 동안의 공덕’을 쌓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글쓰기도 어찌 보면 하나의 법보시法布施라, 나름대로 공덕 쌓는 업業이 아닐는지……. 
이것이 진정 내가 그처럼 글쓰기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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