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일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한 해 두 해 나이테가 감길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져 감을 스스로 깨닫는다. 도무지 못마땅하고 볼썽사납게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서도 짐짓 못 본 척 눈을 감아줄 줄 알게 되고, 좋은 쪽으로 생각의 틀을 넓히고도 싶어진다. 좀 고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알량한 연륜의 값어치라고 일러도 관계찮으리라. 
어저께만 해도 그랬다. 일찌감치 점심을 끝낸 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솔길을 거닐고 있었다. 달아오른 머리도 식히고 나른한 오후의 졸음도 쫓을 겸 해서 나선 산책이었다. 
번잡한 찻길을 벗어나 막 갈참나무 군락지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별안간 바람결에 섞갈리며 연신 중얼중얼 입속말 소리가 들려왔다. 혼자서 하는 넋두리 같기도 하고 둘이서 하는 속삭임 같기도 했다. 어디서 나는 소릴까, 쫑긋 토끼 귀를 하고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핀다. 
저 건너편 쪽 골짜기를 타고 전해져 오는 기도 소리였다. 대략 쉰 가량은 되었으려나. 알맞게 몸집이 잡힌 한 중년의 아낙에게로 눈길이 가닿았다. 여인은 둥글 높직한 바위 앞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치성을 드리는 중이다. 명경대明鏡臺를 닮은 바위가 여인의 조신한 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섰다. 바닥엔 흘러내린 촛농으로 번질번질하고, 바위벽은 양초가 타면서 뿜어낸 그을음으로 온통 시커멓게 변색이 돼 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볼썽사나운 광경에 틀림없이 눈살부터 찌푸려졌을 터이건만, 어인 일인지 자석에라도 끌리듯 강한 호기심이 인다. 어떤 사연일까. 집안에 무슨 액운이라도 있는 것일까. 요즘 같은 취업 전쟁 시대에 사랑하는 자식의 취직을 비는 염원일까. 아니면 몸이 불편한 남편의 쾌유를 기구祈求하는 비원일지도……. 이런저런 의문부호들이 꼬리를 문다.
여인은, 지나다니는 등산객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오로지 기도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 완전한 무아지경인 듯 미동도 없다. 머리 올 한 점 흐트러지지 않은 자태가 조선조의 여인처럼 단아하다. 숨을 고르며 한참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덩달아 숙연해진다. 불현듯 젊은 혈기로 완전히 생속이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조금만 눈에 거슬리는 일을 목격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그 잘난 의협심 때문이었으리라. 이런 광경을 도무지 참아줄 줄을 몰랐다. 예나 지금이나 기도하는 모습이야 그다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길 솟은 바위 앞에다 촛불 하나 밝히고, 향을 피우고, 간단한 제물 몇 점 차려 놓고선 동동동동 징을 두드리며 뜻 모를 주문과 함께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비손하는 것, 대체로 이 정도가 전부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약간의 연기와 향내, 그리고 기껏해야 65데시벨을 넘지 않는 소음이 있을 뿐이다. 
한데도 그때는 그 장면이 어찌 그리 못마땅하게 여겨졌을까. 하잘것없는 미신에 매달려 굳이 산천이 몸살을 앓게 만드는 저런 짓거리를 왜 해야만 하는가 하고 분통을 터뜨렸었다. 고작 서푼 어치도 아니 되는 알량한 정의감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그들의 절박한 사연을 헤아리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돌이켜 보니 참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들이 골짜기를 오염시키면 얼마나 시키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면 얼마나 풍기며,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면 또 얼마나 한다고……. 온 산을 송두리째 까뭉개고, 귀청을 뚫을 것만 같은 요란한 대중가요를 틀어놓고 광란에 가까운 춤판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행태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누가 아는가, 그 간절한 기도의 정성이 하늘에까지 닿아 소원이 이루어지고 세상이 조금은 정화될는지. 아녀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 염천에도 서리가 내린다 했거늘, 여인의 지극한 기원이 잘하면 천지신명의 감화를 얻어내게 될 수도 없잖아 있을 것 아닌가. 세상의 수다한 말들 가운데 기도의 언어만큼 진실되고 함량이 꽉 찬 언어가 또 있을까. 어찌 보면 이런 여인들의 기도가 있기에 우리 사는 공동체가 그나마 이렇게 삐걱거리면서라도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도하고 있는 여인을 대하면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더할 나위 없이 순결하고 푼푼하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조금치의 사악한 기운도 서려 있지 않다.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영악한 마음이나 표독한 심사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비록 인류를 구하고자 하는 큰 원력願力은 아닐지라도,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어떤 절대적 존재 앞에 스스로 몸 낮추는 겸허한 자세만으로도 충분히 따사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여인은, 요사이 텔레비전 일일연속극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그 흔한 반윤리적 행실의 주인공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일 성싶다. 돈독한 신심으로 슬기롭게 가정을 건사하고, 허기가 지는 수입에도 이리 재고 저리 맞추며 착실히 살림을 꾸려 나갈 것 같다. 이런 여인들만 있다면, 세상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혼돈스럽지는 아니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로부터 미신이라며 조금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은들 어떠랴. 비이성적이라고, 불합리하다고 몰아세운들 관계하랴. 그 순정한 마음 하나면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을……. 
요즘 들어 어쩌다 여인의 기도하는 모습을 만나게 될 때면 나는 늘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지난날, 이른 아침 정화수 떠 놓고 장독대 앞에서 소지를 올리시던 어머니의 영상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 뒤말리며 사라지던 하얀 소지燒紙처럼, 너울너울 이승을 떠나가신 어머니가 오늘따라 많이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