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헤어짐의 계절이다. 뭇 생명을 깨어나게 한 지난봄의 설레던 만남, 그 만남의 기쁨 가운데 이미 헤어짐의 아픔이 잉태돼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축제 뒤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공허감, 이것이 세상사의 거스를 수 없는 이법 아니던가. 여기서 아픔은 곧 그리움으로 환치된다. 그러기에 ‘가을’ 하는 말만 들어도 금세 아슴푸레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애잔해 온다. 그만큼 그리움은 이 계절과 호흡이 잘 맞는 정서가 아닌가 한다. 
그리움에도 빛깔이며 가락이 있을까. 회화로 치자면 수묵 담채, 음악으로 따지자면 계면조 장단이다. 소슬바람에 하르르 묵은 잎 떨어뜨리는 가을나무의 여린 가지들을 바라보면서, 한 차례 마음의 병 앓지 아니하고 그냥 무덤덤히 넘어갈 목석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라고. 세월 가는 모습을 보고 세월 가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아련하고 그윽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에 물기가 서린다. 이것이 실존자로서의 아픔을 간직한 채 터덜터덜 삶의 고갯마루를 허청거리는 우리네 소시민의 보편적인 정서가 아닐는지…….
절기상 백로白露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촉감이 옷깃을 헤치며 파고든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그리 청청하던 나무의 잎사귀들에 연한 황금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겠지만, 지난여름은 도무지 한 걸음도 물러설 것 같지 않게 기세등등한 가마솥더위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것이, 가는 세월의 힘에 떠밀려 저만치에서 등 돌리고, 어느새 가을이 문턱까지 성큼 다가와 섰다. 
한여름 내내 귀청을 찢을 듯이 맹렬하게 퍼붓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잦아드는가 싶더니, 뒤미처 귀뚜라미가 그 특유의 애잔한 곡조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아니해 귀뚜라미 소리는 윙윙대는 겨울바람에게 다시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할 것이다. 이 대자연의 엄숙한 질서 앞에 잠시 마음이 겸허해진다.
소리에도 구분이 있을까. 쉴 새 없이 왈왈거리는 선풍기며 에어컨 따위의 기계음이 여름 소리의 대명사였다면, 계곡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며 깊은 숲속에서 우수수 지는 나뭇잎 소리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의 여음, 그리고 사랑에 취한 정인의 다정한 속삭임, 이 모두가 가을이어야만 만날 수 있는 시절의 음향이 아닌가. 마구 정신을 휘둘리게 하는 여름의 소리가 보다 인공의 속성에 기울어 있다면, 그윽이 마음의 안온을 가져오게 하는 가을의 소리는 보다 자연 쪽에 가까울 성도 싶다.
  해마다 이맘때쯤 해, 잠시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달뜬 머리라도 식힐 겸 강변엘 한번 나가 보시라. 가장자리를 따라 끝 간 데 모르게 열 지어 늘어선 무수한 갈대들이 전하는 강변의 이야기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아니, 가뭇없이 사라져 가는 세월의 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갈대 소리에는 전설처럼 아득한 그리움의 빛깔이 묻어난다. 거기엔 흘러간 시절들을 다시금 불러들이는 마력魔力이 숨어 있다. 그것은 가을만이 지니는, 옛사랑의 연인 같은 특유의 계절적인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절 가운데 유달리 가을을 사랑하고, 가을을 아끼며, 가을을 고이 간직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