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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절(추석)이 좋기만 한가
최 필 동 수필가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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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29  16: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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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을 맞으려니 한 나이라도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여러 상념(想念)들이 지나간다. 굳이 말하자면 즐거운지도, 우울한지도 불명확하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손녀 하나는 공부(대학입시) 하느라 얼마나 애 쓰는지를 보고 위로라도 해줄까 했지만, 끝내 오지 않아 얼굴도 볼 수 없었으니 더욱 그렇다.  
비록 반쪽자리이긴 하지만 그나마도 즐거운 일은, 며느리도 없는 아내가 불편한 몸을 끌고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맛이 있다고 하고 담소를 나눌 때였다. 실로 오랜만에 딸과 사위의 식솔(食率)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부모로서는 이보다 더한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었다. 평소 많지 않은 식솔들 생일밥도 맘놓고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에 못지않게 내겐 우울한 일도 있었다. 긴 휴무동안이 왠지 모를 값진 시간을 허송세월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걸어온 발자국이 하도 초라하니 그 초라함이나 면할까 함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니 밀려오는 불안과 초조를 이겨낼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공사(公私) 불문 내게 딱히 부여된 일이 없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가는 세월이 안타깝고 나름으로는 많은 내 할 일이 자꾸만 나를 압박해 옴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한가하게 가는 세월이나 탓하고 시간 헤아릴 겨를도 없이 ‘내 일’에만 몰입해야 함인데, 전혀 그렇질 못 하니 아무리 봐도 모두가 실패한 삶이었다. 그러나 이 나마라도 걸어온 궤적(軌跡)을 남기고자 나름으로는 혼신을 다했지만, 유독 명절을 맞을 때마다 가는 세월이 더욱 안타깝기만 했으며 그게 불안-초조의 요지이다. 
내 지난해 졸저 “용이 되려다 이무기가 됐다”를 내었듯 사실 나는 모든 게 허망한 삶이었다. 결코 겸양(謙讓)이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어느 것 하나 내놓을 것 없는 허허로움뿐이었다. 감히 비유하자면 영국 작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뛰어난 풍자와 기지(機智)의 묘비명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명구가 분명 나 같은 ‘등외 문사’를 겨냥한 것이 분명했다 한다면 그야말로 부화뇌동이겠지만 말이다.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보다 더한, 내 지심우(知心友)가 한 적확(的確)한 묘사가 있다. 그는 나를 회재불우(懷才不遇-재주는 있지만 때를 만나지 못했다)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내 무능함을 우회적으로 위무(慰撫)하느라 한  말이라는 것은 내가 더 잘 알지만, 나는 어차피 내 스스로 ‘얼치기’ 삶이라는  데에는 변명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 한참 전 졸문 ‘내가 걸어온 어릿광대[俳倡]의 길’이란 책을 낸바 있다. 그때 내 삶을 한 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반거들충이’라고 실토했다. ‘잡글’이라도 써보겠다고 감연(敢然)(?)히 나섰지만 오늘날 뒤돌아보니 허허벌판에 다름 아니니 말이다. 이른바 ‘돈키호테’가 되고 말았으니-.
감연히 나선 이 ‘글쟁이’가 문재(文才)가 없으면 이재(理財)에라도 좀 밝았으면 삶이 이리 옹색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참으로 부끄럼만 남았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게 있으니,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 선생의 수필집 “남산딸깍발이”이다.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올곧은)가 서울 남산 산비탈에 모여 살았다. 그 선비들이 선비의 상징인 당혜(唐鞋-가죽신) 대신 나막신을 신고 산길을 오르내렸으니 그때 들리는 소리를 빗댄 말이다. 깜냥도 되지 않는 내가 감히 대학자 이희승 선생의 작품에 슬쩍 끼워 넣음이 몰염치이지만 내 사려(思慮)의 협량(狹量)함을 헤아려 주소서.
오늘의 이 물질지상주의(物質至上主義) 시대엔 나는 정말 ‘남산 딸깍발이’일까? 누가 내게 그런 굴레를 씌워도 나는 정녕 반대하지 않으리라. 나 자신을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달게 받으리라!
이 기쁘고 즐거워야 할 명절에 어쩌면 내 살아온 날의 후회의 일단을 읊조린 것도 같아 스스로 민망하고, 어쩌면 자학적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 뒤돌아본 상념들이 떠올라 이를 주체하지 못 하고 적어본 것이다. 해마다 겪는 설, 추석이지만 내겐 귀중한 시간 헛되이 보내는 것도 같고, 금년엔  더욱 나이가 쌓여가는 안타까움에 역시 내겐 즐겁고 좋기만 한 명절은 아니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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