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잠자리의 날아오름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쥐불놀이를 하듯, 밀잠자리 떼가 하늘 가득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쉴 새 없이 맴을 돈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들고 있었나 보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여름내 그토록 열정적으로 생의 환희를 찬미하던 매미들은 조용히 한 생애를 접는다. 끝도 없이 무상한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섭리, 이 절대의 큰 질서 앞에 어쩔 수 없는 순응. 그 애석하리만치 짧았던 영광과 환희의 순간들을 뒤로한 채…….
한여름의 정취는 뭐니 뭐니 해도 매미 울음소리로 무르익어 간다. 고향 마을 담 모퉁이에 자리한 감나무 잎이거나 개울가에 열 지어 늘어선 미루나무 줄기, 아니면 초등학교 운동장 둘레에 육중하게 버티고 선 채 집채만 한 그늘을 드리운 플라타너스 가지를 점령하고서 매미들은 꼭 제세상이라도 만난 듯 다투어 울음을 토해냈었다. 
녀석들의 울음소리는 싸늘한 촉감에서 시작돼 서서히 달아오르는 갈탄난로 같은 것이 아니다. 장구한 세월 켜켜이 쌓이고 쌓여 온 에너지가 어느 순간 느닷없이 거센 불길로 왈칵 뿜어져 나오는 화산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르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렇게 시동이 걸려 세상을 떠메고 가기라도 할 듯 한바탕 요란을 떨고 나면,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른다. 세찬 소나기 한 줄기 쓸고 지나간 뒤의 적요 같다고나 할까. 그러다 한 놈이 재차 울기를 시작하면, 뒤질세라 다른 녀석들도 다시 일제히 목청껏 합창을 해대는 것이다. 얼마나 열정을 다 쏟아 내었으면 방랑시인 바쇼芭蕉는 그 울음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을까.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구나, 이 매미의 허물은”
칠 년이란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허락된 단 일 주일가량의 짧디짧은 생애, 그토록 허구한 세월을 일구월심 한 목숨 부여받기 위해 오로지 끈기 하나로 견디어 온 그 거룩한 인내심이란……. 
매미들은 이 안타깝도록 덧없는 기간 동안 자신들의 삶을 최대한 의미 깊게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귀청을 뚫을 듯한 열정적인 울음은 성심을 다해 주어진 소명召命에 갚음하려는 녀석들의 피 끓는 몸부림이며 절규가 아닐까. 온 몸뚱어리로 토해내는 그 울음소리에 가만히 귀를 모으고 있노라면, 뭔가 모르게 마음이 요동을 치면서 숙연해 온다.
‘아! 저 녀석들이 어찌타 저리도 울어쌓지.’
매미 소리는 매운 절의의 노래다. 세상에는 실로 오만 가지 소리들이 많지만, 매미의 울음만큼 열정적인 부르짖음이 또 있을까. 그 노래만큼 당당한 목소리가 다시 있을까. 맴맴 맵다고 우는 그 소리에는, 제 이름에 충실히 값하고도 남는 서릿발 같은 의기義氣가 살아 숨 쉰다. 
그런 까닭에서이리라. 매미의 일생은 굵고 짧게 이승을 살다 떠난 이 땅의 의사義士며 열사烈士의 생애를 생각나게 만든다. 쏟아 붓듯 내리꽂히는 폭염에 벌거벗은 울음 하나로 맞서는 매미들의 항거, 이는 지난날 일제의 혹독한 채찍질 앞에서도 가슴 저리도록 의연했던 선열들의 그 뜨거운 저항의 몸부림으로 환치換置되곤 한다. 선열들의 생애는 비록 짧았지만 님들께서 남긴 자취의 울림은 실로 오래이듯이, 여름 한 철이 소낙비처럼 물러가고 선들바람이 소맷자락을 파고드는 시절에도 왕매미 소리의 잔상은 여전히 귓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왕왕거리며 맴을 돈다. 
매미들의 울음은, 계절이 바야흐로 한여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헉헉 숨이 턱에 닿을 듯이 고단한 삼복三伏 무렵, 모든 목숨 가진 존재들이 내리퍼붓는 폭염으로 삶은 나물처럼 생기를 잃고서 흐느적거릴 때, 그들로 해금 조금만 더 기운을 내라며, 조금만 더 용기를 가지라며 녀석들은 쉴 새 없이 울음으로 채근한다. 
자신의 한 목숨 바쳐 풍진 세상 구하려는 속죄양으로서의 충직한 사도, 이것이 매미들을 잠시 이 땅에 내려 보내는 절대자의 속 깊은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너무 울어 쇠잔해지면 매미들은 마침내 조용히 숨을 거둔다. 꽃이 아무리 덧없다 기로서니 그나마 열흘 동안은 붉음을 자랑하거늘, 그 열흘마저도 채 채우지를 못한 채 꺾이고 마는 매미의 한살이. 
곧 이어 가을은 하루가 다르게 성큼성큼 다가설 것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매미들의 울음을 대신해 밀잠자리의 유영遊泳이 빙글빙글 온 하늘 가득 화려하게 수를 놓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라져 간 한 해의 여름을 또 못내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목숨 부여받은 그 어떤 존재자도 거스르지 못할 절대의 이법理法이 아닌가. 이 거역할 수 없는 조화주의 섭리가 내 잠든 영혼을 다시금 흔들어 깨운다. 무릇 흐르는 세월 앞에 그 무엇도 결코 영원불변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