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며칠 조용하던 산문山門이 다시 바빠졌다. 부처님 오신 날에 뒤미처 안거安居 철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매스컴에서는 일제히 하안거 결제에 들어가 용맹정진 중인 크고 작은 절집들의 고요한 치열의 분위기를 특집으로 엮어 전하고 있다. 바랑 하나 달랑 둘러메고 이 절집 저 절집을 물처럼 바람처럼 떠돌던 구도자들도, 이 기간만큼은 일시적으로 운수행각雲水行脚의 삶을 접어두고서 화두 하나씩 붙들고 내명內明한 정신에 불을 켤 것이다. 
지난날 내 불가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천했던 시절, 늘 이맘때쯤이면 세속세계에서는 휴가다 연수다 뭐다 해서 바깥나들이에 분망한데, 출가승들은 왜 하필이면 삼복더위가 턱턱 숨을 가로막는 이런 혹독한 시기를 가려서 산문에 틀어박힌 채 수행에 몰두하는지 그것이 자못 의아스러웠다. 훗날 우연한 기회에 어느 스님으로부터 그 연유를 전해 듣고는, 거기 그토록 속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여름은 뭇 생명체들의 움직임이 사철 가운데 가장 활발한 계절이 아닌가. 그들은 이 시기 동안 제 몸에다 충분한 영양분을 비축해 두어야 하고 또 후손을 남기기 위해 부지런히 생명 활동을 영위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나중에 베짱이의 신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달팽이가 임산부 같은 몸을 끌며 그 특유의 굼뜬 걸음걸이로 하염없이 기어가고 있는 모습은 실로 눈물겨운 데가 있다. 하루 온종일을 쉬지 않고 용을 써도 고작 나뭇가지 하나 타고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 수고로움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필시 그에게도 나름대로 이 시절을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가지 않으면 아니 되는 곡절이 있으리라. 
어찌타 달팽이뿐이랴. 개미나 지렁이 같은, 땅 위의 하잘것없어 보이는 생명 가진 것들이 저마다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아등바등하고 있는 광경은, 그를 지켜보는 이로 해금 숙연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아, 저 여리디여린 미물들이……. 
우리는 길을 가다 자신도 모르게 이 애처로운 생명체들을 밟아 뭉개는 수가 있다. 우리의 자각 못 하는 실수가 그들에게는 곧바로 죽음으로 결과된다.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에 연못 속의 개구리가 맞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처럼. 다시 맞은 축복의 시절에 어이없게도 하나뿐인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사실, 미물들로서는 이것이 얼마나 억울할 노릇이겠는가. 아마도 그래서이리라, 일본의 하이쿠 작가 오니츠라가 
“목욕한 물을 버릴 곳이 없구나, 온통 풀벌레 울음소리” 
라고 노래한 것은. 미물에게까지 지극한 사랑과 자비심을 베풀고자 했었던 시인의 속 깊은 고뇌의 흔적에 마음 한 자락이 젖어 온다.
우리는 누구 없이 살아가면서 무수한 업을 짓는다고 한다. 업이라고 해서 물론 악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업도 있다. 또한 알고만 짓는 것도 아니다. 모르고도 짓는다. 행동으로 짓는 것만도 아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이 모든 방편 가운데 업業은 순간순간마다 우리 몸속에 쌓여 가는 것일 게다. 
우리네 사람이 무심중간에 생명체들을 해치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모르고 짓는 악업일 터이다. 용광로에서 벌겋게 단 쇠를 모르고 덥석 쥐게 되면, 그 위험성을 알고 쥐었을 때보다 상처가 훨씬 깊어진다고 가르치는 『밀린다왕문경』의 비유에서처럼, 어쩌면 모르고 짓는 죄업이 알고 짓는 죄업보다 오히려 더 크고 무거울 성도 싶다.
하안거에는 이처럼 부지중의 살생마저 업이 됨을 경계하는 숭고한 생명 사랑의 정신이 담겨 있다. 우리들 사람 사람의 가슴 가슴마다에 이 하안거의 생명 사랑 정신이 깃들 수만 있다면…….
이런 상념에 젖어, 지금 이 순간 나들잇길에 나선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진다.